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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274

김순옥 작가의 귀환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막장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의 (2008)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드라마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작품이 아니라 동생과 나눴던 짧은 대화 때문이다. 어느 날 넋 놓고 이 드라마를 보며 추임새를 넣고 있던 동생이 하도 신기해 간략한 줄거리를 물었다. ​ “죽은줄 알았던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야.” ​ “어떻게 남편이 자기 아내인지 모르니?” ​ “점 찍었잖아.” ​ “……” ​ 나의 반응은 저 말줄임표가 보여준다. 한 마디로 어이없는 설정(?)에 나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부와 짜고 아내를 죽였다고 하더라도(죽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점 하나 찍고 돌아온 아내를 모른다니. 그때 나는 도저히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의 작품관은 물론이거니와 그 ..

인간은 모순입니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전화가 울립니다. 출국 전 날 술을 같이 마신 “윤씨”입니다(지난 번 에서 언급된 바로 그입니다. http://aroundstudy.net/221581403343). 단잠을 깨우는 목소리에 짜증반,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반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공항에서 출국 전 어제 분실한 자신의 시계를 찾는 용건에 더해(칠칠치 못한 인간같으니라고) 나중(?)에 학위가 끝나면 보자는 인사였습니다. 갑자기 그와 나눈 어제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오락가락하는 그의 말에 참(!)으로 인간은 묘하구나라고 헛웃음이 나왔던 술자리였죠. ​ 그 날 그가 털어놓은 말 속 심정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자신은 자살할지 모른다. 둘째, 자신은 결혼하고 싶다. 셋째, 학위를 마치면 출가하겠다. 그런데 이 진술..

원고지/낙서장 2021.04.02

당신을 독서왕으로 임명합니다

매일 숙제처럼 하는 것이 있으니 그 주인공은 독서다. 대개는 취미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공부를 위한 독서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글을 읽은 순간부터 책은 언제나 가까이 있었다. 게다가 학교에 오랫동안 학생으로 적을 둔 까닭도 여기에 일조했다. 지금은 학교와 관계가 없는 신분이지만 앞으로도 책은 옆에 있을 거 같다. ​ 평생 책을 읽었으니 나름의 책을 읽는 비결도 이제는 생겼다. 과거보다 지금의 독서가 훨씬 효율적이다. 책 읽는 속도에서 이해의 정도까지 모든 면에서 요령이 생겼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대개 공부를 위해 책을 읽는다. 취미로 책 한 권을 들기 보다 일을 위해서 독서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해다. 그리고 얕은 이해가 아니라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나는 책을 여러 번 다시..

혜민이 몰랐던 것들

혜민 스님(이하 혜민)이 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물론 방송 활동만 그렇다. 주말을 잠깐 시끄럽게 했던 뉴스는 혜민의 종교인으로서 이율배반적 모습을 전했다. 검소한 삶이 아니라 화려한 삶을 사는 그의 현실이 전달돼 실망을 줬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 정도야 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아무래도 혜민이 지금껏 해왔던 말 때문에 논란이 증폭됐던 것 같다. ​​ 그의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은 나로서는 혜민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앞으로도 혜민의 책을 읽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를 각인시킨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할 뿐이다. 아마도 세속적 기준과 다른 언행을 설파하고 다녔으리라. 그리고 혜민의 적당한 ..

오늘부터 자신을 혁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쉬운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타인보다는 자신을 바꾸는 게 쉽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질문을 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나 자신이다. 습관이라는 관성에 빠져 자신을 바꾸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쉽지만 동시에 가장 바꾸기 어려운 사람은 바로 나다. 이런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살다보면 뜻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는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 습관은 한번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관성이 아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등 여러 번의 행동이 습관으로 굳어진다. 이 습관은 시간이 지나면 인격이 된다. 그리고 ..

신은 위대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참수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죄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특별한 관련도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는 점이 충격을 더했다. 첫 사건의 피해자는 교사로 이슬람을 비하(?)하는 만화를 수업에 활용했다는 이유가 다였다. 그리고 이차 사건의 피해자는 그때 그곳, 바로 성당에 있었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 이들 이슬람 극단주의 가해자는 모두 범죄 현장에서 “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나는 이 뉴스가 참수라는 소식과 함께 가장 무서웠다. 도대체 그들의 신은 어떤 신이길래 살인을 용인한다 말인가. 신이 있다면 신은 전지, 전능한 존재일뿐만 아니라 전선의 존재여야 할 것이다. 신=선이라는 도식..

당신은 어떤 책을 읽습니까?

햇볕 쨍쨍한 날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공원 구석 그늘 밑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고 싶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이죠.  그러나 일도 해야 하니 그 소망은 잠시 주말로 미뤄둬야 할 듯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는 데 독서가 꼭 들어갑니다.  어릴 때 혹시라도 취미란을 작성할 기회가 있으면 독서외에 딱히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딱히 두드러 보이지도 않고 무미건조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취미를 가져보려 노력도 했으나 배운 게 도덕질이라고, 여전히 독서는 중요한 취미로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에는 서점에서 주로 서적을 구매했다면 지금은 거의 99% 온라인을 이용한다는 ..

원고지/낙서장 2021.04.01

저는 불면증이 없습니다

제목과 다르게 나는 불면증이 없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잠을 못 자서 고통을 호소하지만 나는 잘 잔다. ‘불면증이 없다’는 이 말이 누군가에게는 자랑처럼 들릴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해 힘든 사람을 많이 봐왔다. 그런데 내가 잠을 잘 이룬 습관이 평생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밤에 온몸을 뒤적거리면 잠을 이루지 못한 시절도 있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자야 한다는 강박에 별 짓을 하던 그런 시간 말이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잠을 잘 자게 됐을까? ​ 우선 내가 잠을 잘 못 이루던 그때로 돌아가보자. 정말 불면증에 시달렸을 때는 하루는 자고, 하루는 못 자는 식의 패턴이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기에 뜬눈으로 밤을 세워도 일어나야 했던 시간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

마음이 고프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잔상으로 남는 이미지를 생각해본다. 단편적인 조각에서 그 영화를 기억해보려는 노력이다. 어떤 영화는 그 인상이 각인돼 시간이 흘러도 잊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어떤 이미지도 남지 않아 잊혀진다. 어제는 문득 한 영화 장면이 기억났다. 저녁 식사 이후 체육관을 갔다 온 뒤 불쑥 찾아온 허기와 함께 말이다. 그 영화는 바로 (2018, 임순례)의 한 신이었다. ​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으로 시각을 즐겁게 했던 이 영화에서 내게 떠오른 이미지는 그런 풍요의 그림이 아니었다. 주인공 혜원이 자취방 냉장고에서 찾은 썩은 사과 한 조각이 떠올라서다. 영화 속에서는 도시 생활의 각박하고 힘든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인공은 도시의 정신적 허기를 시골의 풍요로운 음식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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