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마음이 고프다

공부를 합시다 2021. 4. 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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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잔상으로 남는 이미지를 생각해본다. 단편적인 조각에서 그 영화를 기억해보려는 노력이다. 어떤 영화는 그 인상이 각인돼 시간이 흘러도 잊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어떤 이미지도 남지 않아 잊혀진다. 어제는 문득 한 영화 장면이 기억났다. 저녁 식사 이후 체육관을 갔다 온 뒤 불쑥 찾아온 허기와 함께 말이다. 그 영화는 바로 <리틀 포레스트>(2018, 임순례)의 한 신이었다.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으로 시각을 즐겁게 했던 이 영화에서 내게 떠오른 이미지는 그런 풍요의 그림이 아니었다. 주인공 혜원이 자취방 냉장고에서 찾은 썩은 사과 한 조각이 떠올라서다. 영화 속에서는 도시 생활의 각박하고 힘든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인공은 도시의 정신적 허기를 시골의 풍요로운 음식으로 채운다. 마치 무언가를 보상받기를 원하듯이 말이다.

냉장고에서 말라 비틀어져 그 시간조차 알 수 없는 사과를 기억해냈던 것은 영화의 그녀의 허기가 요즘 나의 허기랑 겹쳐졌기 때문이다. 가짜 배고픔에 속아 먹어됐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몇 개월 사이 약간 몸무게가 불었다. 체육관에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러 갔건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못했나보다. 스마트폰 건강 어플에는 걷기의 기록이 저장돼있는데 평소 걷던 거리보다 훨씬 못 미친 킬로미터가 저장돼있다. 그만큼 몇 개월 동안 나의 신체활동이 줄어들었다는 방증이리라.

아마도 활동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고 있었나보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귀처럼 먹었으니. 아마도 체중계로 그 현실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별로 신경쓰지 못했을 것 같다. 몇 킬로그램 늘어난 몸무게에 퍼뜩 정신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단순히 체중의 중가를 활동의 부재로만 이해해야 할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곧장 몸에 변화가 찾아온다. 잠이 안 온다거나, 몸무게가 는다거나, 걷기가 줄어든다든가 식이다. 여기에 하나 추가해야 할 후보가 아마도 저 허기인 듯 하다. 머리로는 가짜 허기로 느끼지만 어느새 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나마 나에게 강박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럼에도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이 느꼈을 허기가 고스란히 내게도 나타난다는 생각이다. 육체의 허기가 아니라 정신의 허기로 말이다.

이 굶주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해볼 수 있는 실천은 좀 더 걷고 우유 한 잔으로 그 허기를 달래는 일이다. 그 위로는 육체를 달래는 노력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을 치료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새 나는 마음의 빈곤을 애써 토닥토닥해가며 안정시키고 있다. 풍요로운 그 날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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