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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글쓰기/말하기 23

인문학 강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인문학 강연은 다르다 인문학의 범주는 전통적인 문학, 역사, 철학을 비롯해 예술과 종교 등을 포괄한다. 학문적 분류를 굳이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면 '인간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인문학을 학교에서 공부했고 지금도 어쩌면 이런 테두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대중에 어떻게 다가갈까는 항상 고민거리다. 대학 강당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장소에서 인문학을 설파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중이 접하는 인문학 강의는 일회성인 경우가 많다. 혹시라도 특정한 주제를 벗삼아 연속적인 강의가 이뤄진다면 아마도 그것은 대학 강연처럼 체계가 잡힌 틀에서 이뤄지니 그나마 고민이 덜하다. 이런 강의를 제외한다면 기관과 회사 등에서 기획되는 인문학 강연..

말 잘하는 인싸로 태어나는 법

코로나 시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다보니 말 하는 법을 잊었나 싶을 정도다. 한때는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이런저런 강의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입장이라 항상 말 잘하는 법에 관심이 있었다. 주로 교육을 위한 강의였지만 말하기 주제로는 관련 문헌을 모든지 읽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말이나 글이나 다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잘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이든 좋다. 그러나 때때로 말하기 고수의 생각을 되씹으면 역시 기본이 있다는 생각이다. 오늘 추천하고픈 말하기 책은 래리 킹의 (2015)이란 책이다. 토크쇼를 무려 63년이나 진행했던 이 전설적인 진행자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히 코로나19에 걸려 올초 운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아..

말은 인격이다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다 보면 항상 인터넷과 접속해 있다. 그러다보니 포털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때 내가 항상 피하는 기사가 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헤드라인 속 특정한 이름이 나오면 무조건 지나간다. 솔직히 그 이름 석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기사 제목만 봐도 이들이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논객'이라 부르며 보수언론에서 띄어주는 이들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그 이름은 바로 '진중권'과 '서민'이다. 한때는 이들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억조차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가 돼버렸다. 왜 이리 언론에서 이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가져와 전달하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속칭 메이저 언론, 대표..

정치인의 토론법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각 당은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 돌입해 당의 대선 후보를 뽑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절차가 경선 주자들 사이 토론일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를 거쳐 전달되는 토론은 후보자의 이미지를 낱낱이 공개하는 현장이므로 그 파급력이 크다. 그런데 나름 정치 현장에서 준비를 해왔다는 후보들은 얼마나 토론 실력이 좋을까? 그리고 정말로 그 토론 실력이 경선 결과에 영향을 끼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각 당의 후보자들의 토론 실력은 득표와 별 상관이 없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 이유를 꼽자면 일단 유권자들은 시간의 제약상 각 당의 토론 현장을 꼼꼼히 점검할 정도로 열성적이지 않다.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스로..

말하기는 경청이다

‘A=B’ 형식의 제목을 나는 싫어한다. 이 형식은 증명을 요구한다. ‘A=A’가 아니라, ‘A=B’이니 왼쪽 항과 오른쪽 항이 왜 같은지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종류의 두 항을 연결하는 고리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 내가 등식의 형식으로 제목을 짓고자 한 이유는 섬광같이 어떤 착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등식만이 말하기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일상에서 우리는 무수한 말을 한다. 그 말은 주인을 찾아 꽂힌다. 그 주인은 바로 청자이다. 말을 하는 행위에 이미 반대편의 대화 상대가 내정돼 있다. 그런데 말을 잘 하기 위해서 종종 간과하는 게 있다. 화자 중심의 테크닉을 고안하는 데 몰두한다. 대부분 스피치 책은 화자가 어떻게 말을 시작해 이끌고 종결할지..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는 방법

무대공포증. 이 말의 사전적 정의는 “무대에 올라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이나 공연 따위를 하는 것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병적 증상”(출처: 우리말샘)입니다. 저의 경우 과거보다는 무대 경험이 많아져 “무대공포증”이라 부를 상황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무대 경험이라고 해봤자 강연, 강의를 비롯한 교육 등 기회입니다. 그래도 불특정한 관객을 앞에 세우고 진행하는 강연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나갈 기회가 있는 교육과 달리, 강연은 처음보는 청중 앞에 서야하는 자리라 이 관계형성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유대감을 쌓을 기회 없이 “던져져야”(이 말이 이 상황에서는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하는 거죠. 수많은 인원 앞에서 평정심을 갖추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공부도..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인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날이면 주요 일과가 컴퓨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문서 작업을 하든, 서핑을 하든, 유튜브시청을 하든지 말이지요. 간혹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도대체 무얼 하며 놀았을까, 내지는 어떻게 일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장치는 필수재처럼 다가와 있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환경이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업무의 효율면에서 능률을 높이기는 커녕 정신 산란한 조건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지 않나, 의심이 들기 때문이죠. 멀티 테스킹이 일상이 된 나머지 한 작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작업을 할 궁리를 찾고 있으니까요. ​ 이런 점에서 모바일환경을 대표하는 스마트폰도 골치거리입니다. 쉬는 시간이건 업무 시간이건 스마트폰이 곁..

네 자신을 알라

우리는 종종 양립불가능한 직관과 마주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속담이나 경구에서 찾아볼 듯합니다. 가령,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진술과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진술을 생각해보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는 것은 힘입니까, 아니면 오히려 긁어서 부스럼내는 꼴인가요. 정답은? 그때그때 다르다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맥락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주어질 겁니다. 예를 들어, 시험공부하는 학생에게 부모는 지식의 역량을 강조하며 전자의 경구를 지지하겠죠. 그에 반해 남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후자의 경구를 신조처럼 삼을 겁니다. 오히려 알면 골치아프니까요.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지침을 선택하는 일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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