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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274

혼자 살아 좋습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특히나 분주한 날이었다. 오전에는 예정대로 공부를 위해 책을 읽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압력밥솥의 부속품을 구입하기위해 차를 몰고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그리고 한 주 찬거리 준비를 위해 시장을 방문해 이것저것을 구입했다.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가 책을 빌린 뒤 막간의 독서를 했다. 지금 글을 쓰기 전까지 일과가 이게 다다. 생산적인(?) 일을 한 거는 특별히 없는데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는데 하루가 다 간듯 하다. 뭐 이런 식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라도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 시간의 속도를 빠르게 느끼는 데 기여하는 것이 따로 하나 있다. 바로 혼자 산다는 현실이다. 몇 년 전 동생이 결혼을 한 뒤에는 쭉 혼자 산다. 딱히 홀로 사는 게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서바이벌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매일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 번째 일과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다. 예를 들어 아침 7시 기상이라면 그 언저리에 잠을 자연스럽게 깬다. 마치 그 정도면 ‘이제는 됐다’라고 몸이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그만큼 습관은 무섭다. 이런 아침 첫 일과와 함께 스마트폰 뉴스를 가볍게 확인하는 일이 다음 일과다.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연예까지 기사를 쭉 훑는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을 쏟는 시간이다. 중요한 사건을 찾고 의미를 생각해본다. ​ 요즘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던 키워드는 ‘서바이벌’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탓에 사회 전체가 ‘코로나 이후’를 외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다시 찾은 블로그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지난 몇 주 내내 논문발표 때문에 바빴습니다. 논문 통과를 위해 3번 발표를 해야 하는데 이번 학기에 겨우 2번째 발표가 끝났습니다. 원래 계획은 이번 학기에 마무리해야 하지만 그놈(?)의 게으름탓에 한 학기를 더 연기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2/3는 끝났으니 여기에 만족하렵니다. 아직도 1/3은 남았지만 말입니다. ​ ​ 대충 급한 일이 끝나 이제는 생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스위치 변경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논문 발표를 위해 준비할 때는 하루하루가 너무 짧다고 느꼇는데,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느낌입니다. 거기에 더해 반갑지 않은 손님인 게으름까지 저를 찾아왔습니다. 게으름의 징후는 제게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으로 나타납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원고지/낙서장 2021.04.01

손절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살다 보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인간 관계 아닐까 싶다. 그곳이 어디건 인간 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을 많이 봤다. 나 또한 그런 문제를 겪었고 앞으로도 경험할 터이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 있지는 않다. 문제의 본성상 각자가 슬기롭게 헤쳐나갈 사안이다. 왜냐하면 삶의 맥락이 다른데 거기에 ‘이거야!’라고 말할 현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인간 관계에서 손절의 순간은 있다고 본다. ​ ​ 최근 나는 유쾌하지는 않지만 한 사람과 연락을 끊었다. 그래봤자 전화는 수신차단, 카톡은 삭제, 메일은 스팸 등으로 처리를 한 게 다이다. 그 내막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긴 시간 동안 계속되는 상대의 진상짓(?)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런저런 일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생긴다...

공동체의 이름: 영화 <김복동>(2019)

누군가의 이름, 바로 고유명은 그 사람만의 이름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렇지 않다면 고작해야 그 이름을 기억하는 가족, 친구 등 몇몇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의 이름은 범위를 넓혀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돼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이름에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고통과 상처가 깊숙이 새겨 있기 때문이다.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고통의 기억이기 때문에 반드시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김복동”이라는 이름 석자를 우리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영화 의 주인공 김복동은 위안부 피해자로서 1992년 이후 자신이 겪은 전쟁범죄를 증언한 ‘인권 운동가’이다. 나는 ‘인권 운동가’라는 호칭이야말로 김복동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일본군 성범..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동네를 걷다 보면 낯선 풍경에 잠시 길을 멈추곤 한다.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지만 색다른 사물 때문에 달라진다. 버스 정류장 근처 새로운 간판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미아리에나 가야 볼 줄 알았는데 우리 동네에서도 드디어(!) 점집이 들어섰다. 주변 상권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유독 눈에 띈다. ​ 잠시 동안 간판을 쳐다봤다. 시선을 사로 잡는 문구 "오로지 영으로 봅니다." ​ 미래를 알 수 있다면야 오늘이라도 가고 싶다. 그리고 드는 생각 하나, '요새 내가 생각이 많구나.' 점집에 가는 실천(?)을 하지는 않았다. 스스로 약해진 모습을 인정하지는 않나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래도 점집을 지나갈 때마다 유혹에 시달릴 거 같다. 갈까, 말까.

원고지/낙서장 2021.04.01

미래를 바꾸려면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라

어린 시절 나는 참으로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자 열망했다. 평소 스스로를 평가하기에 감정적 인간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사안을 판단하고 행동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던 탓도 있다. 그래서 대학 시절 내가 관심 갖고 있던 주제 중 하나는 가령, ‘합리적 결단’이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특히 논리학과 관련된 전공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이유도 이런 사정에 있었다. 그 생각이 대학원 공부까지 이어졌다. 이런 생각은 이후 나의 삶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 ​ 단순한 진실 하나! 세상은 논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겉으로 보자면 논리가 작동하는 ..

불안을 바라보다: 영화 <버닝>(2018)

안개가 자욱한 아침 종수(유아인)는 허겁지겁 뛴다. 벤(스티븐 연)의 은밀한 취미 계획을 듣고 그 현장을 확인하고자 뛰어다닌다. 뿌연 안개로 가득 찬 논길을 뛰는 종수의 얼굴은 절박해 보인다. 매일 아침 부질없는 수색이 반복될수록 주인공의 숨소리는 커져만 간다. 왜 그토록 찾아 헤맬까. 불타버린 비닐하우스는 있을까. 종수의 절박한 달리기가 반복될수록 관객은 의문을 갖는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이유로는 그 집착이 해명되지 않는다. 찜찜한 기분을 남겨두고 생활해도 되건만 종수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혔다.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벤이 파주를 찾아온 뒤로는 종수의 아집은 더 강해졌다. 황량한 논밭 사이로 불타버린 비닐하우스를 찾아 헤매는 종수의 심정은 뿌연 안개 같다. 비닐하우스 밖에서 얼굴을 갖다 대고 안을 쳐..

저에겐 작가의 벽이 없습니다?

요즘 글을 쓸 때마다 작가의 벽에 종종 부딪히곤 합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해 컴퓨터 스크린만 쳐다봅니다. 시간이 흘러도 공고한 이 벽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꾸준히 글을 써야 하는 처지인지라 이 순간은 고통스럽습니다. 작가의 벽이 통곡의 벽으로 변해 버리는 시간입니다. 이때는 펜이 흘러가는 대로 써야 한다는 조언을 되새기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 ​ ​ 수년 전에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의식이 가는 대로 , 정확히 얘기하자면 무의식을 쫓아 글 쓰는 훈련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씻지도 않고(?) 침상 위 노트에 무작정 펜이 가는 대로 쓰곤 했습니다. 구상도 개요도 없이 그저 기분대로 써내려 갔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애를 썼습니다. 그래..

원고지/낙서장 2021.03.31

접속 불안에 시달리십니까?

최근 들어 인터넷 사용이 많아져 고민이었다. 누가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공부 때문에, 일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많게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접속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스마트폰을 꼽아야 하겠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 주 스크리닝 타임을 체크해보는데 하루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스마트폰 사용에 할애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긴 시간에 깜짝 놀랐다. 물론,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를 듣기 위해 접속한 일과가 그 배경이다. 거의 1시간 정도를 꼬박꼬박 스마트폰으로 청취하거나 시청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과도하다는 느낌은 어쩌지 못하겠다. 스마트폰 외에도 노트북 등 접속시간까지 따져 본다면 그 시간의 양이 어마어마할 듯하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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