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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274

각자의 문제는 각자의 방식대로

나의 또래 부모님처럼 어머니는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독서는 어머니가 가장 신경쓰던 교육이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시절 읽었던 책의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상당수 책들이 전집류의 책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독 위인전이 많았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기대가 나타난 결과였으리라. 지금까지 나의 저편 기억 속에 남아있는 위인 중 한명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삽화처럼 들어간 이야기 한 편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 그 이야기는 바로 고르디우스 매듭과 관련된 이야기다. 오늘날에도 ‘고르디우스 매듭’은 난제를 의미할 때 종종 언급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프리기아의 왕 고르기우스는 신전 앞에 자신의 마차를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 봉인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

꼰대가 되기 싫어요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란 타이틀이 붙었는데 그만큼 영화 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나보다. 워낙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라 윤여정의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의 이력을 찾아보니 올해 나이가 벌써 73살이다. 영화 가 아니더라도 윤여정은 꽤 연기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그냥 할머니면 할머니, 커리어 우먼이면 커리어 우먼, 그 역할에 맡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윤여정이 배우라는 직업에 걸맞은 연기자라는 생각을 해왔다. ​ 꾸준히 자신의 직업적 경력을 성취한 것 외에도 윤여정을 각인시키는 에피소드는 많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윤여정의 인터뷰 한 대목이 생각난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배우 사이에서도 전혀 위화..

욕망의 T.O.P.

지난 주 전 SBS 앵커 김성준 논설위원의 사직 소식은 당황스러운 뉴스였습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사실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이유 때문에 놀랐죠. 전 날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뉴스가 전달되더니, 저녁 즈음에는 이유가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몰래촬영혐의가 그 이유였습니다. 자정 무렵 지하철에서 여성 치마를 몰래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죠. 사직서 제출과 수리가 단 하루만에 이루어졌는데 굉장히 신속한 일처리였습니다. 재빨리 논란을 정리하겠다는 방송국의 의지에 더해 방송국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합산돼 발생한 결과죠. (의 진행자 김상중의 말투를 따라하자면) 그런데 말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 샌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과연 이번 한번뿐이었을까, 그리고 회사 내에서는 문제가 ..

원고지/낙서장 2021.04.04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이 나약해지는 데는 이유가 다 있다. 단순히 돈이 없어서, 병이 들어서, 사업에 실패해서 등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신의 빈곤에서 오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생에서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고, 심지어 나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 견디지만,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한다. 나는 그 이유를 정신의 허약에서 온다고 판단한다. 그 중에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는 태도가 가장 문제다. ​ 모든 개인은 사회적 개인이니, 누군가 사회를 떠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유지하는 일은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족, 연인, 친구, 지인 등 누군가에게 의지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스스로가 자립하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허약한 사람이다. 이런 태도가 나이가 든다..

꼭 필요한 사람?

며칠 전 저녁 뉴스를 보다가 재미난 기사를 보았다. 초등학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논란이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어떤 가정통신문이었을까? 가정통신문에서는 세상의 사람을 3 종류로 분류했다고 전한다.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필요 없는 사람’이 바로 카테고리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니던가. 어릴 때 나는 종종 저런 말을 조회 시간에 들었다. 당연히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나는 기사를 보기 전 저 분류가 저렇게 문제가 되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문제가 됐을까? 문제의 발단은 학부모들이었다.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아이를 저런 식으로 학교가 분류..

시간은 삶을 만드는 재료다

바람은 서늘하고 햇볕은 따사로운 날이다. 이런 날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다. 바람결에 하늘을 한번 쳐다볼 여유가 절로 생긴다. 며칠 동안 집중도 잘 안 되고 계획은 탄력을 받지 못해 지지부진하고 있었다. 마음이 산란거리니 어떤 일도 능률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화장한 날은 이 하나만으로도 사람에게 힘을 준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고 누군가를 만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여전히 공원은 마스크를 쓴 사람으로 가득하다. 그래도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광장을 뛰어 다니고 어른들은 그 운동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살아있다는 것은 운동이다. 이 운동 속에서 반복은 차이를 낳을 계기를 마련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 변화의 힘을 얻는다. ..

원고지/낙서장 2021.04.04

노인들의 후회

살다보면 핑계가 많아진다. 돈이 없어서, 나이가 많아서, 가족 때문에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산다. 물론 자신의 욕망을 적절히 제어하고 줄이면서 사는 게 나쁘지는 않다. 조금 부족한듯 살면서 순간순간의 의미를 찾는 삶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정말로’ 하고 싶은 삶을 못 살고 노년을 맞이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지나간 시간을 애석해하고 한번 해볼껄하며 속으로 그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실제로 노인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묻자 해본 일이 아니라, 해보지 못한 일을 일순위로 뽑았다고 한다. ​ ​인생이란 그렇게 보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나이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노년에 접어들어 과거를 돌아..

권력의 게임: 드라마 <빌리언스(Billions)>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영화에 푹 빠져 지내려고 노력한다. 코로나바이러스탓에 야외 활동이 제약된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최근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전공을 살려 강의를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학교나 기타 장소에서 강의는 금전적으로 매력이 없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내가 나의 공부를 재워두지 않고 써먹는 방법은 영화를 정기적으로 보고 글을 쓰는 행위가 다다. 나름 안목을 살려 평가를 하는 것이다. ​ ​요새 내가 빠져 있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라는 쇼타임즈의 미국 드라마다(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하다). 시즌 5까지 나온 이 드라마를 한창 빠져서 보고 있다. 과거에 추천을 받았지만 섣불리 걷드리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시작하면 끝내야 한다는 부..

낯선 부고

누군가의 죽음은 감흥이 없다. 애도를 해야 하건만 망자와 기억이 없어서다. 오늘 저녁 사촌형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막내 고모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 소식이었다. 그런데 막내 고모부와 특별한 사연이 별로 없다. 만남이라고 해봤자 한두 번인가. 아마도 고모의 결혼식 한 번, 그리고 어디선간 한 번이었던 듯 하다. 그게 다다. 간이 안 좋다는 얘기를 몇 년전부터 듣고는 있었는데 뜻밖이다. ​ 막내 고모는 아버지의 형제자매 중 그나마 많이 본 친척 중 하나다. 어린 시절 집 근처에서 산 적도 있었다. 먼 시골에서 올라와 직장 생활을 하다 선을 봐 결혼을 했다. 그런데 딱히 고모부가 생활력이 있었던 거 같지 않다. 거의 고모가 얘들을 뒷바라지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멀리서 소식이 들려올 쯤에는 고모부가 참으로 무..

원고지/낙서장 2021.04.03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어린 시절 나는 ‘자기계발서’라고 부르는 도서에 반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요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데 이런 류의 책은 일조한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일종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셈이다. 그러나 모든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혐오하지는 않는다. 특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라도 읽어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이 부류의 책이 함량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다. 책의 분류라는 게 어차피 자의적이므로 충분히 다른 카테고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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