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꼰대가 되기 싫어요

공부를 합시다 2021. 4. 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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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란 타이틀이 붙었는데 그만큼 영화 <미나리>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나보다. 워낙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라 윤여정의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의 이력을 찾아보니 올해 나이가 벌써 73살이다. 영화 <미나리>가 아니더라도 윤여정은 꽤 연기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그냥 할머니면 할머니, 커리어 우먼이면 커리어 우먼, 그 역할에 맡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윤여정이 배우라는 직업에 걸맞은 연기자라는 생각을 해왔다.

꾸준히 자신의 직업적 경력을 성취한 것 외에도 윤여정을 각인시키는 에피소드는 많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윤여정의 인터뷰 한 대목이 생각난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배우 사이에서도 전혀 위화감 없이 스며드는 그에게 누군가 ‘쿨하다’, ‘꼰대스럽지 않다’ 등의 찬사를 보냈다. 그러자 윤여정이 말하길 “누구나 꼰대가 돼간다. 다만, 덜 꼰대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 인터뷰를 보자 참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는 그저 ‘꼰대가 아니야’라고 외칠 뻔 한데,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노력하겠다는 말이 그 사람의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이 세대, 지역, 계급, 젠더 등 다양하다. 이런 정체성은 그 사람을 규정하는 부분이니 쉽게 벗어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가령, 세대만 봐도 그렇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 갖는 심적 상태를 그 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른다. 가령,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처럼 세대에 폭넓게 호소하는 작품도 있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세대의 감흥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레트로 감성이 유행한다지만, 그것은 젊은 세대가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이해한다, 공감한다고 말하지만 정체성이 다른 집단 사이에 상대를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분명한 차이가 있어서다. 아마도 윤여정은 그 차이를 섬세하게 깨닫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차이를 의식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배려하고 어울릴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을 중심에 두고 타인을 평가하려 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윤여정이 동료 배우나 제작자, 감독 등에서 받는 찬사는 이해가 된다. 꼰대스럽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윤여정이 최근 모 인터뷰에서 밝힌 말을 소개하고 싶다. “사람이 여유가 생기면 감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유가 없을 땐 원망을 하게 되지요. 제가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네요.” 이 여유가 아마도 윤여정을 꼰대스럽지 않은 어른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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