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김순옥 작가의 귀환

공부를 합시다 2021. 4. 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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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막장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의 <아내의 유혹>(2008)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드라마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작품이 아니라 동생과 나눴던 짧은 대화 때문이다. 어느 날 넋 놓고 이 드라마를 보며 추임새를 넣고 있던 동생이 하도 신기해 간략한 줄거리를 물었다.

“죽은줄 알았던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야.”

“어떻게 남편이 자기 아내인지 모르니?”

“점 찍었잖아.”

“……”

나의 반응은 저 말줄임표가 보여준다. 한 마디로 어이없는 설정(?)에 나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부와 짜고 아내를 죽였다고 하더라도(죽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점 하나 찍고 돌아온 아내를 모른다니. 그때 나는 도저히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의 작품관은 물론이거니와 그 드라마에 빠져 사는 시청자까지.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드라마는 인기몰이를 했고 당시 동생의 몇 가지 안 되는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요새 다시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2020)가 인기다. 작품의 내용이 어떻건 시청률만 보면 승승장구다. 한 자리수로 시작한 시청률은 곧 두 자리수로 뛰었고 계속 오를 기세다. <아내의 유혹> 이후 나는 “막장”이라고 부르는 드라마를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었다. 다소 억지스러운 사건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문법을 지닌 장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작품성이 없다고 폄하하기 전에 시청자의 반응 속에 그 의미를 생각해보곤 한다.

작품 자체만 보면 평가절하할 수 있지만 시청자가 호흥한다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때는 저 막장이 모든 드라마를 장악한 적이 있었다. 이 채널을 틀어도 막장, 저 채널을 틀어도 막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막장은 아침 드라마나 저녁 드라마처럼 일일 드라마 편성표에만 자리를 내주는 듯 했다. 아무래도 너무 많으면 약발이 떨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김순옥 작가의 귀환을 보면서 막장의 위력은 여전하구나라고 실감한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기 마련이다. <펜트하우스>만 봐도 그렇다. 이 드라마를 소개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부동산’과 ‘교육’. 미디어를 장식하는 단골 뉴스 아닌가. 부를 향한 욕망은 종종 이 두 단어로 요약되곤 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서민(?)에게 그나마 계급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다리는 저 부동산과 교육 정도다. 아마도 작가는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저 욕망을 교묘히 건드렸나보다. 누구나 드라마 속 화려한 펜트하우스에 살고 싶고, 누구나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는 학교에 자신의 자녀를 보내고 싶은 것은 인지사정이다.

드라마 세계가 따져보면 완전히 허구의 세계는 아니다. 오히려 어느 순간에는 현실보다 더 진실다울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막장 드라마의 세계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막장은 자신의 생명력을 떨치게 된다. 누구나 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저 욕망을 전시하면서 말이다. 살다 보면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막장스럽다고 느낄 때가 많다. 차라리 드라마는 권선징악이라도 있으니 현실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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