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꼭 필요한 사람?

공부를 합시다 2021. 4. 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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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녁 뉴스를 보다가 재미난 기사를 보았다. 초등학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논란이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어떤 가정통신문이었을까? 가정통신문에서는 세상의 사람을 3 종류로 분류했다고 전한다.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필요 없는 사람’이 바로 카테고리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니던가. 어릴 때 나는 종종 저런 말을 조회 시간에 들었다. 당연히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나는 기사를 보기 전 저 분류가 저렇게 문제가 되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문제가 됐을까? 문제의 발단은 학부모들이었다.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아이를 저런 식으로 학교가 분류해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그탓에 한 장의 가정 통신문은 미디어를 탔다.

물론 해당 학교 선생님은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가정통신문은 당일 삭제되었다. 더불어 학교의 교장 이름으로 사과문이 게시됐다.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세상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소리를 의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훈계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런 분류는 사람의 가치 내지 의미를 기능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다. 이때 판단의 기준은 집단이다.

 

만약에 집단에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않는 사람이라면, '있으나 마나한 사람 내지는 필요 없는 사람’이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회사에서 누군가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당사자는 참으로 기분이 나쁠 것이다. 조직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월급이나 축낸다는 평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적 사고 방식이 과거에는 사회 전반에 통할 때가 있었다. 그 집단이 어디건 각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닌가보다. 그런 점에서 학부모들의 항의가 이해가 된다.

이와 함께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학교에서는 아마도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할텐데 나이가 들어도 도대체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막연하게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면 훌륭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저런 논란을 듣고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공동체에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개인은 각자가 너무 소중하지 않던가. 그런 점에서 나는 저 기사 속 가정통신문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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