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욕망의 T.O.P.

공부를 합시다 2021. 4. 4.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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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전 SBS 앵커 김성준 논설위원의 사직 소식은 당황스러운 뉴스였습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사실이 놀라운 게 아니라 그 이유 때문에 놀랐죠. 전 날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뉴스가 전달되더니, 저녁 즈음에는 이유가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몰래촬영혐의가 그 이유였습니다. 자정 무렵 지하철에서 여성 치마를 몰래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죠. 사직서 제출과 수리가 단 하루만에 이루어졌는데 굉장히 신속한 일처리였습니다. 재빨리 논란을 정리하겠다는 방송국의 의지에 더해 방송국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합산돼 발생한 결과죠.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 김상중의 말투를 따라하자면) 그런데 말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 샌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과연 이번 한번뿐이었을까, 그리고 회사 내에서는 문제가 없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듭니다. 어찌됐든 이 소란은 일주일만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대중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눠지는 듯합니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며 첫째, 김성준 전 앵커의 위선을 비꼬는 게 하나였고, 둘째,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뭐하러 저런 행동을 할까라는 의문이었습니다. 과거의 발언을 보면 몰래 카메라와 같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서 엄하게 꾸짖는 기록이 남아 있어 더욱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이 겪는 불안을 생각한다면 심각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제가 더 궁금했던 질문은 오히려 두 번째와 관련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도 지위거니와 소위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대담하게 저런 행동을 왜 했을까라는 거였습니다. 왜냐하면 검거되면 회복불가능한 타격을 입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불법촬영이 아니라 다른 범죄였다면 어땠을까요. 요새 ‘윤창호법’ 때문에 엄격해진 음주운전이라고 생각해보면, 방송국이 저렇게 내치지는 않았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적당한 시간 동안 자숙하고 돌아왔겠죠. 물론 약간의 이미지가 손상됐겠지만 말입니다.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욕망일지라도 누구나 내면으로는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금지된 욕망을 상상하거나 꿈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욕망이 현실에서 표현되거나 행동하면 문제가 됩니다. 욕망에도 T.O.P.가 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회적 인간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관계의 존재이기에 그 관계를 위협하는 행위는 제제를 받게 마련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성적인 이슈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김성준 전 앵커가 지하철이 아니라, 이른바 ‘업소’에서 저런 일을 벌었다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별 문제가 안 됐을 듯합니다. 그 이유는 거기는 그 정도의 행동은 허용된다는 암묵적(?) 전제가 허용되는 곳이니까요. 이 주장에 어떤 분들은 그조차도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하루만에 사표가 수리되는 일은 없었을 듯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문제는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욕망을 건전하게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욕망을 충족하는 방식이 아니라, 욕망을 대체하는 방식을 강구해야 하는 거죠. 그 출발은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의식의 수면으로 떠올려 놓은 뒤 방안을 고민하는 거죠. 무조건 부인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무의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또는 무의식이 영원하다면, 그 장소에 자리잡은 욕망 또한 영원할 겁니다. 그런데 문득 여기서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회가 제제하는 어떤 욕망이 있다면, 그 욕망은 개인만의 내밀한 욕망일까요, 아니면 그 개인은 사회적 개인이니 사회의 비밀스런 욕망일까요? 김성준 전 앵커의 사건에서 몰카라는 행위가 보여준 도착증이 개인의 병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질환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드는 대목입니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몰래 보고 싶다는 욕망은 시선의 폭력을 의미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어떤 식으로든 지배하겠다는 욕망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지 않나하는 의심이 듭니다. 그래서 한 방송인의 일탈이 사사로운 일탈로 보이지 않는 까닭입니다.

우리 모두 사회적 존재인지라 욕망의 양상은 대개(?)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 부류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싶은 욕망이 대표적인 예이죠. 이런 점에서 주변의 욕망은 예측가능합니다. 게다가 그 경쟁의 정도도 추측가능합니다. 서로가 공통으로 갈구하는 욕망일수록 싸움이 치열합니다. 자원은 한정돼있으니 욕망의 대상을 얻으려고 경쟁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욕망은 모호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과 저것이 분명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의식되지 못한 욕망에서 발생합니다. 이 욕망의 장소는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김성준 전 앵커의 사건처럼 말이죠. 어떤 뉴스에서 술 마신 뒤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으로 김성준 전 앵커가 변명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벌어진 사단(?)이라는 얘기입니다(그래도 범죄는 용서되지 못하죠. 그저 비겁한 변병일 뿐입니다!). 의식되지 못한 욕망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욕망입니다. 불법촬영을 ‘욕망’이라고 지칭하기는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욕망은 대표적으로 법이라고 하는 상징에 가로막혀 평범한 사람은 그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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