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당신은 어떤 책을 읽습니까?

공부를 합시다 2021. 4. 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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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쨍쨍한 날이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공원 구석 그늘 밑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고 싶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 바로 그런 날이죠. 그러나 일도 해야 하니 그 소망은 잠시 주말로 미뤄둬야 할 듯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게 몇 가지 있는 데 독서가 꼭 들어갑니다. 어릴 때 혹시라도 취미란을 작성할 기회가 있으면 독서외에 딱히 생각나지 않아 난감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딱히 두드러 보이지도 않고 무미건조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취미를 가져보려 노력도 했으나 배운 게 도덕질이라고, 여전히 독서는 중요한 취미로 남아 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에는 서점에서 주로 서적을 구매했다면 지금은 거의 99% 온라인을 이용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할까요.

 

이 즈음이면 제가 책 구입을 위해 이용하는 ‘알라딘’에서 “당신의 기록”이 조회가능합니다. 회사 창립기념을 맞아 매년 여는 이벤트인데, 온라인 회원이라면 구매내역을 상세히 조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얼마나 많은 책을 구매했는지, 구매액은 얼마인지, 그리고 전체 회원 중 상위 % 인지 등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알라딘 가입 이후 구매 통계이기 때문에 저의 경우는 10년에 걸친 기록을 보여준다고 봐야 하겠네요. 살짝 기록을 공개하자면, 구매액 기준으로 알라딘 회원 중 상위 0.59%의 회원입니다(자랑은 아닙니다). 예전 보다는 확실히 책을 덜 산다 덜 산다하지만 이 정도면 꽤나 많이 읽는(?) 또는 구매하는 회원인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여지껏 멤버쉽 등급이 일반회원으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쌓아두면 책도 짐인지라 되도록이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여전히 많이 샀습니다. 그런데 이 통계에서 흥미로운 게 있습니다.

알라딘 통계는 동년배의 구매패턴을 살짝 비교해서 보여주는데, 제 동년배(?) 40대들은 주로 기독교, 동화/명작/고전, 그림책을 많이 구매한 것으로 나옵니다. 종교분야는 잘 모르겠으나, 동화나 그림책 등은 왠지 이해가능합니다. 이 정도 나이는 아버지나 어머니로 자녀를 위한 책을 주로 구매하는 소비패턴을 보이는 거죠. 그에 반해 저는 1위 서양철학, 2위 문학의 이해, 3위 영화, 4위 철학 일반, 5위 사회사상 등 이런 순서의 구매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인데다가, 여전히 대학원에 한발을 걸쳐놔서인지 책 카테고리가 그렇습니다.

이 비교를 보면서 잠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잇값 못하지 않나라는 걱정이 문득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이론서 위주의 독서를 하고 있다는 데서 사람 참 달라지기 힘들다라는 생각을 해서이죠. 그러나 이 통계도 허수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더 많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습니다. 사는 책과 빌려 읽는 책을 구분하는 셈인데, 주로 빌려 읽는 책은 비즈니스 관련 서적입니다. 줄 치고 공부해야 하는 책은 사고, 그렇지 않으면 빌립니다.

전혀 상반된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이 이제는 굳어져 버렸습니다. 일을 위해서 읽는 책, 공부를 위해서 읽는 책 따로 입니다. 게다가 거의 동시에 읽어 나갑니다. 그런데 이런 독서법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어떤 책은 계속 허공으로 저를 데려가려는데, 어떤 책은 저를 땅으로 잡아 끌기 때문입니다. 이런 독서 이력은 현실이란 땅에 뿌리박고 책을 읽게 도와줍니다. 구체적인 것을 경유하면서 추상적인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거죠. 모든 독서의 경로는 땅에서 출발해 하늘로 올라갔다 다시 땅으로 되돌아 와야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독서란 결국 자신의 필요가 가장 큰 원동력이 돼야 하는데, 그 필요는 현실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내면의 힘을 기르는 원천이 되든, 현실을 바꾸는 수단이 되든지 말입니다. 오늘은 더운 여름 한가운데 독서의 의미를 문득 생각해봤습니다. 여름이 뜨거울수록 차가운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이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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