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원고지/문화 비평 85

운명에 맞서는 방법: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2019)

순위표에 있으면 무엇이라도 호기심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갖나 알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지난 주말 나는 넷플릭스에서 여느 때처럼 무엇을 봐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때 가장 쉬운 수단은 저 순위표다. 적당한 작품 하나 고르고 진득하니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래서 내가 고른 작품은 바로 애니메이션 (2019)이다(솔직히 나는 볼 거 없으면 애니메이션을 본다). 일본에서 꽤나 흥행을 기록한 애니메이션인데다가 그 영향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을 달리고 있다. 이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과 사는 주인공은 어느날 혈귀에 의해 온가족이 살해당하는 비극을 마주한다. 눈내리는 날 벌어진 참극에 탄지로는 오열한다. 그나마 여동생 네즈코..

빈센조가 악당을 처리하는 방식

최근 드라마 가 끝났다. 꾸준히 따라가보며 보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시청한 드라마다. 최종회가 방송되자 그 결말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기존 드라마와 다른 결말 때문인가 보다. 특히 주인공이 악당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색다르다', '통쾌하다'는 등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물론 이런 호평만 있지는 않다. 15세 이상 시청 드라마치고는 그 결말이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게까지 다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악당, 장준우(옥택연), 최명희(김여진), 한승혁(조한철) 등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들의 악행만큼이나 가학적이다. 한승혁은 법원 앞에서 장준우가 보낸 괴한에게 살해되고 그 장면을 수많은 취재진이 지켜본다. 계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는 그저 기사거리..

김어준은 돈값을 하나?

보궐 선거가 끝나자 재미난 기사가 났다. 단발성 기사긴 하지만 포털에 걸치니 제목이라도 보게 된다. 다름 아니라 TBS 을 진행하는 김어준의 연봉에 관한 기사다. 요지는 김어준의 몸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이런 황색지에 보조를 맞추듯 국민의힘 의원이 맞장구를 쳐주고 계속 이슈를 끌어가고 싶은 모양세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이런 주장이 사실에 기초하지는 않는다. 해당 방송사에 문의를 한다든지, 아니면 당사자 김어준에게 연락을 한다든지 사실을 확인하고픈 의지는 없다. 왜? 그냥 흠집내고 싶은 기사나 주장이기 때문이다. ​요즘 이런 김어준 기사를 보면 참 재미있다. 선거 전에는 공정성 시비를 걸더니, 선거 결과가 나오자 이제는 돈으로 문제를 삼고 있기 때문이다. 돈값을 못하니 빨리 내쫓으라는 게 그들 주장의 ..

꼰대가 되기 싫어요

배우 윤여정이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란 타이틀이 붙었는데 그만큼 영화 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나보다. 워낙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 미디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라 윤여정의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의 이력을 찾아보니 올해 나이가 벌써 73살이다. 영화 가 아니더라도 윤여정은 꽤 연기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그냥 할머니면 할머니, 커리어 우먼이면 커리어 우먼, 그 역할에 맡는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윤여정이 배우라는 직업에 걸맞은 연기자라는 생각을 해왔다. ​ 꾸준히 자신의 직업적 경력을 성취한 것 외에도 윤여정을 각인시키는 에피소드는 많다.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 윤여정의 인터뷰 한 대목이 생각난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 어린 배우 사이에서도 전혀 위화..

꼭 필요한 사람?

며칠 전 저녁 뉴스를 보다가 재미난 기사를 보았다. 초등학교에서 신입생을 대상으로 가정통신문을 보냈는데 논란이 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어떤 가정통신문이었을까? 가정통신문에서는 세상의 사람을 3 종류로 분류했다고 전한다. ‘꼭 필요한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필요 없는 사람’이 바로 카테고리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아니던가. 어릴 때 나는 종종 저런 말을 조회 시간에 들었다. 당연히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나는 기사를 보기 전 저 분류가 저렇게 문제가 되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문제가 됐을까? 문제의 발단은 학부모들이었다.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아이를 저런 식으로 학교가 분류..

권력의 게임: 드라마 <빌리언스(Billions)>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영화에 푹 빠져 지내려고 노력한다. 코로나바이러스탓에 야외 활동이 제약된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최근 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전공을 살려 강의를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학교나 기타 장소에서 강의는 금전적으로 매력이 없다는 게 나의 판단이었다. 그러니 내가 나의 공부를 재워두지 않고 써먹는 방법은 영화를 정기적으로 보고 글을 쓰는 행위가 다다. 나름 안목을 살려 평가를 하는 것이다. ​ ​요새 내가 빠져 있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라는 쇼타임즈의 미국 드라마다(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하다). 시즌 5까지 나온 이 드라마를 한창 빠져서 보고 있다. 과거에 추천을 받았지만 섣불리 걷드리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시작하면 끝내야 한다는 부..

김순옥 작가의 귀환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막장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의 (2008)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드라마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작품이 아니라 동생과 나눴던 짧은 대화 때문이다. 어느 날 넋 놓고 이 드라마를 보며 추임새를 넣고 있던 동생이 하도 신기해 간략한 줄거리를 물었다. ​ “죽은줄 알았던 아내가 남편에게 돌아와 복수하는 이야기야.” ​ “어떻게 남편이 자기 아내인지 모르니?” ​ “점 찍었잖아.” ​ “……” ​ 나의 반응은 저 말줄임표가 보여준다. 한 마디로 어이없는 설정(?)에 나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정부와 짜고 아내를 죽였다고 하더라도(죽은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점 하나 찍고 돌아온 아내를 모른다니. 그때 나는 도저히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의 작품관은 물론이거니와 그 ..

혜민이 몰랐던 것들

혜민 스님(이하 혜민)이 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물론 방송 활동만 그렇다. 주말을 잠깐 시끄럽게 했던 뉴스는 혜민의 종교인으로서 이율배반적 모습을 전했다. 검소한 삶이 아니라 화려한 삶을 사는 그의 현실이 전달돼 실망을 줬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 정도야 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생각은 달랐다. 아무래도 혜민이 지금껏 해왔던 말 때문에 논란이 증폭됐던 것 같다. ​​ 그의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은 나로서는 혜민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앞으로도 혜민의 책을 읽을 기회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를 각인시킨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 제목에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할 뿐이다. 아마도 세속적 기준과 다른 언행을 설파하고 다녔으리라. 그리고 혜민의 적당한 ..

신은 위대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죄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이번 일련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참수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범죄의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특별한 관련도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는 점이 충격을 더했다. 첫 사건의 피해자는 교사로 이슬람을 비하(?)하는 만화를 수업에 활용했다는 이유가 다였다. 그리고 이차 사건의 피해자는 그때 그곳, 바로 성당에 있었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 이들 이슬람 극단주의 가해자는 모두 범죄 현장에서 “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고 전해진다. 나는 이 뉴스가 참수라는 소식과 함께 가장 무서웠다. 도대체 그들의 신은 어떤 신이길래 살인을 용인한다 말인가. 신이 있다면 신은 전지, 전능한 존재일뿐만 아니라 전선의 존재여야 할 것이다. 신=선이라는 도식..

마음이 고프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잔상으로 남는 이미지를 생각해본다. 단편적인 조각에서 그 영화를 기억해보려는 노력이다. 어떤 영화는 그 인상이 각인돼 시간이 흘러도 잊기 힘들다. 그러나 어떤 영화는 어떤 이미지도 남지 않아 잊혀진다. 어제는 문득 한 영화 장면이 기억났다. 저녁 식사 이후 체육관을 갔다 온 뒤 불쑥 찾아온 허기와 함께 말이다. 그 영화는 바로 (2018, 임순례)의 한 신이었다. ​ 다채로운 음식의 향연으로 시각을 즐겁게 했던 이 영화에서 내게 떠오른 이미지는 그런 풍요의 그림이 아니었다. 주인공 혜원이 자취방 냉장고에서 찾은 썩은 사과 한 조각이 떠올라서다. 영화 속에서는 도시 생활의 각박하고 힘든 시간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주인공은 도시의 정신적 허기를 시골의 풍요로운 음식으로 채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