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운명에 맞서는 방법: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2019)

공부를 합시다 2021. 5. 2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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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표에 있으면 무엇이라도 호기심이 생긴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갖나 알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지난 주말 나는 넷플릭스에서 여느 때처럼 무엇을 봐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때 가장 쉬운 수단은 저 순위표다. 적당한 작품 하나 고르고 진득하니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래서 내가 고른 작품은 바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2019)이다(솔직히 나는 볼 거 없으면 애니메이션을 본다).

 

일본에서 꽤나 흥행을 기록한 애니메이션인데다가 그 영향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을 달리고 있다. 이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과 사는 주인공은 어느날 혈귀에 의해 온가족이 살해당하는 비극을 마주한다. 눈내리는 날 벌어진 참극에 탄지로는 오열한다. 그나마 여동생 네즈코가 숨이 붙어 있다. 하지만 여동생은 혈귀로 변해버린다.

 

귀살대 토미오카 기유에 의해 목숨을 구한 탄지로는 동생을 고치기 위해 귀살대에 들어간다. <귀멸의 칼날>은 바로 주인공이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혈귀를 처단하고 악의 축 키브즈치 무잔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주인공이 역경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목숨이 경각이 달린 시점에도 탄지로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다.

 

주인공이 무공을 닦는 과정이나 혈귀를 처단하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언제나 죽을듯 고생을 다하고 난 뒤에야 임무를 완수한다. 그 과정에서 탄지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바로 츠유리 카나오와 대화 장면이다. 이 시퀀스야말로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추스리고 난 뒤 임무를 수행하려 떠나기 전 탄지로는 카나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다. 카나오는 어린 시절 겪은 불행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소녀이다. 그런 카나오에게 탄지로는 동전을 던지면서 앞 면이 나오면 앞으로 그녀가 감정을 표현하고 살기로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동전을 던진다.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동전은 앞면이 나온다. 그 결과에 카나오는 동전을 조작했냐고 묻는다. 이에 탄지로는 고개를 젓는다. 그냥 우연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뒤 탄지로는 동전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몇 번이든 동전이 앞면이 나올 때까지 던졌을 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 장면이말로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연의 정체가 행운일지 악운일지 중요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기억해야할 것은 도전이다. 우연이 행운일 될 때까지 시도할 수 있느냐이다. 대부분 사람은 행운이 도래하기 전에 나자빠지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 애니메이션의 서사는 별 게 아니다. 요약하자면 탄지로의 성장 이야기이다. 십대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동생을 잃는 큰 슬픔에도 자신에게 남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무공을 쌓을 때 불가능해 보였던 바위를 벤 동력은 그저 묵묵이 자신의 길을 간 탄지로의 의지였다. 5월 한창 슬럼프를 겪고 있는 나는 이 애니메이션의 잔상이 보고 나서도 계속 남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포기하지 않는 일념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바위를 베는 것같은 무모한 도전에 계속 나서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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