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군대의 기억: 영화 <D.P.>(2021)

공부를 합시다 2021. 9. 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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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의 극장 방문은 코로나 상황에 막혀 있다. 사람들 많은 곳에 방문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럽다. 되도록이면 사람들 안 만나고 분비는 곳에 잘 안 간다. 그럼에도 가끔 영화가 보고 싶으면 주말에 넷플릭스를 이용해 한편 정도 보는 편이다. 그것도 처음 구독할 때보다는 시들해져 화제작 정도만이 관람 대상이다. 말 그대로 영화 보는 취미 자체가 시들해졌다고 할까. 그럼에도 지난 주말은 애써 영화 한편을 넷플릭스에서 찾아 봤다. 정확히는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연작 드라마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그 작품은 바로 <D.P.>(2021)이다.

 

제목 자체가 생소하다. D.P.? 이것은 무슨 약자인가. Deserter Pursuit: 군무 이탈 체포조. 생소한 약자의 제목을 단 이 작품을 선택한 동기는 단순하다. 정해인과 구교환 등과 같은 대세 배우의 출연, 이들의 케미를 보여준 트레일러가 왠지 재미있을 거 같다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군대를 배경으로 하는 진지한 메시지를 고려했다기 보다는 그저 간간히 유튜브에 떠도는 이들 사이 벌어지는 코미디(?)를 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런 가벼움 보다는 무거움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성이라면 의무적으로 군대를 간다. 나 또한 무려 20여년 전에 전방 GOP에서 군생활을 보냈다. 그때도 군대는 가혹한 장소였다. 제대한지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기억이 생생하다. 가혹한 얼차려와 구타가 난무하는 곳에서 그저 묵묵이 견뎠을 뿐이다. 그래서 영화 <D.P.>를 보고 나서는 그 시절이 소환돼 참으로 괴로왔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작가 김보통의 체험을 반영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2010년대 초반의 군대의 사건이 배경이 되는 듯하다. 내가 군대 생활을 한 시가와 무려 10여년 차이가 나는데도 그 당시도 똑같았나 보다.

 

제대 이후 군대의 사건사고가 지면을 떠들석하게 장식해도 딱히 관심이 없었다. 요새 시끄러운 군대 성폭력 사건기사에도 그런가보다하고 넘겼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서는 참으로 군대의 폭력을 내가 어떻게 견뎠는지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자대를 배치봤고 소초 근무 첫날부터 맞았다. 거기에 이유가 있지 않았다. 선임이 기분 나쁘다고 맞고 질문했다고 맞고 그런 식이었다. 전방의 특수한 환경에서 구타는 대놓고 이어졌고 지휘관의 부대 관리는 엉망이었다. 심지어 내가 속한 부대는 내가 복무한 몇 년 사이 탈영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예비군도 끝나고 민방위도 마쳐 군대의 기억을 소환할 기회가 없다. 그런데 영화 <D.P.>는 예비군 상당수에게 PTSD를 동반하나보다. 영화와 관련된 게시판을 살펴보면 심지어 70-80년대 군복무 경험까지 소환하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 영화의 사회적 반향이 크다.나는 이 영화의 반응이 한국사회의 폭력을 군대라는 장소가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20대의 혈기왕성한 남성 대다수가 경험하는 장소 중 하나가 군대 아니던가.

 

영화 대사마냥 누군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군대는 물리적 정서적 폭력의 장소(?)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영화로 전시되고 말해지면 더 좋아지리라 기대해본다. 끝으로 지금도 묵묵이 '의무'라는 이유로 군대에서 복무할 누군가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정말로 군대 때 많이 듣던 말이 있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메달아도 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나마 그들에게 위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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