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삶이 게임이 되는 순간: <오징어 게임>(2021)

공부를 합시다 2021. 9. 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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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볼 때마다 한번쯤 영화의 운을 따져보곤 한다. 영화의 운이란 바로 흥행이다. 이때 관객 몰이란 단순히 경제적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와 관객 사이 대화가 활발히 이뤄져 어떤 의미가 형성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2021)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특징상 그 흥행 지표는 플릭스페트롤(FlixPatrol)과 같은 사이트의 순위 지표일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추석 연휴 개봉 이후 서서이 순위를 높여 가더니 드디어 1위에 등극했다.

 

추석 연휴 한가롭게 이 시리즈를 정주행했던 나로서는 이 정도로 파급력이 있을 정도였나라는 생각에 놀라움을 숨기기 힘들었다. 화려한 세트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 이상은 딱히 큰 흥미가 없었다. '나빠요'에 투표를 던질 정도는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주변에 이 작품을 권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는 킬링 타임 영화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세계적 흥행에 힘입어 연일 미디어에서 떠들다보니 새롭게 이 시리즈가 다가왔다.

 

이 영화의 주요한 키워드는 상금 456억을 놓고 벌이는 '데스 게임'이라는 설정일 테다. 영화를 떠나서 현실에서 목숨을 내놓고 게임을 하라고 권유한다면 누구도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단판도 아니고 6번의 게임을 모두 승리해야 상금을 획득하는데, 패배의 대가는 죽음이기에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기댓값이 너무(!) 불리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참가자들은 목숨 건 게임을 한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이다.

 

<오징어 게임>의 설득력은 바로 '자발적'으로 참가자들이 게임에 참여한다는 상황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더라도 투표로 다시 집으로 귀환할 기회를 얻었던 참가자들 대부분이 다시 한번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귀환한다. 물론 관객은 그들 사정을 세세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시달려 생의 막다른 골목에 도착해 있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흡입력은 바로 주인공들이 처한 '한계 상황'에서 나온다. 출구가 없는 현실에서 목숨을 건 도박은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네 삶이나 바다 건너 다른 이의 삶이나 같다. 자본주의가 편재한 세상에서 돈의 굴레에서 벗어날 이는 별로 없다. 권력을 쥔 이들이 아니라면 평생을 "돈! 돈! 돈!"을 외치며 살아야 한다. 그놈(?)의 돈만 있다면 상당수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도 마찬가지다. 사채빚 때문에 건달에게 시달리고 돈을 변통하기 위해 이혼한 전처에게까지 돈을 부탁하는 궁색한 상황에서 그가 기댈 수 있는 희망이 어디 있으랴. 지하철에서 우연히 받은 명함은 그에게 한줄기 희망이었을 것이다. 설사 한여름의 꿈일지라도 말이다.

 

천장에 메달린 돼지 저금통을 카메라는 비춘다.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돈다발이 저금통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는 것은 돈이다. 마치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참가자들은 달린다. 나는 이 시리즈가 세계적인 흥행을 달리는 이유가 누구나 한번쯤 저런 악몽을 꾸기 때문이라고 본다. 삶이 죽느냐 사느냐의 게임이 될 때, 그리고 돈이 삶의 유일한 근거가 될 때 공포의 오징어 게임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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