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글쓰기/글쓰기

글쓰기는 무의식을 드러낸다

공부를 합시다 2021. 4. 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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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불안이 갑자기 엄습해왔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이상야릇한 감정 때문에 퇴근하는 길이 괜스레 우울해졌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인가. 따갑게 쬐이던 햇볕도 잠잠해지는 이 즈음 선선한 바람에 기분도 좋아져야 하건만 그렇지 않았다. 저녁식사 이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그 정체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다음 날은 말짱하게 우울감이 사라졌다. 그래도 질문은 남았다. 대답은 어디에 있는가? 불안의 정체를 알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글쓰기다. 왜라는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 나는 글을 쓴다. 처음에 답은 알지 못해도 쓰다 보면 해답을 알 듯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겉보기에 의식적인 작업이지만, 쓰기는 이미 활동 전부터 시작된 무의식 작업이기도 하다. 애써 글감을 찾고 주제를 정하고 개요를 잡는 구상 등 과정에서 이미 한바탕 시끌벅적한 대화가 오고 간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못하든) 대화를 하다 보면 적어도 문제가 분명해진다. 이처럼 글쓰기는 자신을 인식하는 수단이다. 나는 어떤 매체보다도 쓰기가 가지는 매력에 빠져 있다. 여기서 강조해보자. 읽기가 아니라 쓰기다. 독서의 매력도 있지만, 쓰기는 또 다른 매혹을 지닌다. 특히, 자신을 아는 데 이만큼 좋은 매체가 있던가. 글을 쓰는 그 시간동안 만큼은 온전히 이 작업에 집중해야 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온 신경을 글을 쓰는 데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서시이 수면 아래에서 위로 떠오르는 게 있다.

글을 써나가며 나는 아까 서두에 언급했던 불안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그 이유를 알 거 같다. 불안과 관계맺은 원인은 과잉결정돼 있겠지만 적어도 하나는 집어 낼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관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지 않나라는 걱정이 그 후보이다. 조직에 얽매여 사는 직장인의 삶도 아니니 나의 환경을 생각해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해서 산다는 기쁨은 있으나, 이면에는 적극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거나 만들지 않는 한 고독해지기 쉬운 조건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정기적으로 동호회든 어떤 장소든 사람을 만나러 다니곤 했었다. 그러나 시간의 무게는 만만치 않아서 그 다짐을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런데 며칠 전에는 홀로 산다는 위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건이 있었다.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그날 내게 닥친 사건은 무섭기까지 했다. 토요일 밤 시간을 한가로이 보내기 위해 마신 맥주 한 캔이 문제였다. 주량은 세지는 않지만 그 정도에 취하지는 않는다.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는 정도니까. 그런데 한 잔을 비우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나서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레 현기증이 나면서 순간 주저 앉아 버린 것이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견디기 힘든 어지러움에 비틀비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드러누워 있었다. 보는 눈이 없으니 창피할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닥친 그 일에 순간 스스로가 당황했다. 금새 현기증은 사라졌지만 그 날은 혼자 사는 위험을 생각해본 하루였다. 큰 일이 닥치면 누가 도와준다 말인가. 나이들어 간다는 위험에 더해 홀로 산다는 위험이 가중되는 듯해 찜찜했다.

 

어린 시절에는 사회적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없다. 무난하게 관계를 유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생각처럼 좋지만은 않겠구나라는 불안을 느낀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글을 쓰면서 불안의 해결방향도 알 듯하다. 글쓰기가 내면의 생각을 분명하게 해주다보니 얻은 소득이다. 앞으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말고 넓힐 계획이다. 지난 몇 년간 공부한다는 핑계 등 이런저런 구실을 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사람이라고 해봤자 사업적 관계로 맺어진 사람이 대다수여서 더욱 그랬다.

​어느 날 문득 불쑥 올라온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쓴다. 자유로운 글쓰기야말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도구이다. 나를 알기 위해서도라도 나는 글쓰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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