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글쓰기/글쓰기

서술어 어미에 대하여

공부를 합시다 2021. 4. 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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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나는, 이 ‘나’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자신이 없어서도, 나를 숨기고 싶어서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글의 독자를 우선시하겠다는 나름의 의지 표현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나’를 강조하며 글을 쓰고 싶다. 그래야 자신의 생각, 주장, 느낌을 보다 선명하게 강조할 수 있을 듯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문장의 종결어미가 발휘하는 효과를 말하고 싶다.

주어를 ‘나’로 선택했을 때 고른 종결어미가 발휘하는 효과가 있다. 이런 ‘나’를 부각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글의 어조가 강해지고 딱딱해진다. 그래서 문장의 종결어미도 ‘합쇼체’, ‘해요체’ 등으로 쓰기보다 단정적인 ‘하다체’로 쓰게 된다. 누군가는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글을 쓰는 주체를 강조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평서문의 어조도 세차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한 손쉬운 방법은 그에 맞는 종결어미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딱딱한 어조는 문장을 넘어 단락과 글의 내용을 강하게 만든다.

 

확신해 차 있는 발화자의 태도가 내용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버린다. 과거에 나는 일부러라도 주체를 부각하는 주어와 단정형 표현을 쓰곤 했다. 그 연유는 일상에서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는 태도가 오히려 확신 없고 자신 없는 태도로 비쳐지는 게 너무나(?)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장은 ‘~할 듯하다’라는 겸양의 태도를 뜻하는 종결어미를 추방시켜 버렸다. 하지만 강한 주장은 그 반박도 세차게 오기 마련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논문으로 일컫는 글에서다.

학술적인 글에서는 학술공동체의 규범을 따라야 하기에 단정을 하다가는 되레 비판을 많이 받는다. 증명의 부담 때문이다. 예전 논문을 쓸 때 가치판단을 내리는 대목에서 나는 수많은 지적을 받곤 했다. 수많은 반례를 들으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학술적인 글에서는 적당히 요령껏 피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논문에서 만큼은 나는 전략적(?)으로 겸양의 태도를 취한다(솔직히 나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이런 블로그와 같은 개인적인 글에서 만큼은 설사 비판을 받을지언정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것이 나의 심정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쓰건 그것은 개인사인데, 그렇게 되면 수신자가 종종 사라져버린다. 그게 뭐가 대수냐 싶지만, 나는 독자를 향한 편지를 띄운다는 생각으로 글을 쓴다. 물론 그 독자는 수취인 불명일 때가 많다. 통계로 잡히는 익명의 독자는 고작해야 성별 등만 확인될 뿐 정체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 정보를 찾으려고 서핑을 하다 우연히 방문한 자들일 거다. 그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얼마나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얻을 수 있느냐다. 그래서 긴 글이나 사념의 글은 스쳐 지나가 버린다.

 

독자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슬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쓴다. 그리고 대부분 편지의 형식으로 글을 쓸 생각이다. 그러다 오늘처럼 나의 생각을 ‘강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합쇼체에서 하다체로 종결어미를 바꿀 예정이다. 그리고 그런 문장이 쓰인 글은 나의 생각이 보다 온전하게 그리고 강하게 표출된 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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