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세계/거래를 합니다

분노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공부를 합시다 2021. 4. 5. 13:44
반응형

 

며칠 전 '분노'가 치밀어 오른 사건이 있었다. (더 강한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쓰겠다). 이유는 도서관에서 문서 작업을 하던 중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자판소리가 신경쓰인다며 화를 냈던 것이었다. 순간 나는 어이가 없었다(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유아인)가 내뱉었던 그 “어이”다). 우선, 그 공간은 노트북 작업이 허용된 공간이었다. 더구나 열람실 출입구에는 노트북으로 인한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민감한 사람은 다른 열람실을 이용하라는 안내가 되어 있었다. 둘째, 문서 작업을 할 때 소리를 내면 얼마나 내었겠는가. 나는 자판을 춤추듯 소리를 내며 치지도 않는다. 여하간 순간 상대의 말에 나는 짜증이 났다. 본인이야말로 이용수칙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를 두는 꼴이라니. 열람실 밖에서 언쟁을 할까하다 그쪽이 잘못 알고 있다고 말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날 종일 그 일 때문에 괜히 화가 나 신경이 쓰였다.

며칠이 지나 그 일을 생각해보면서 나는 그 분노를 성찰해봤다. 성격상(?) 나는 밖에서 화를 낸 기억이 거의 없다. 누가 건드리지 않는 한 격하게 반응하지도 않는다. 사회화가 잘 됐다고 해야 할지,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고 할지,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게 나는 적절한 거리를 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밖에서는 되도록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을 회피하고 상대가 비후호적일지라도 격하게 응수하지 않는다. 감정소비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믿기에 그렇다. 그런데 그 날따라 정말 부정적 감정이 치밀어 올라 지속되어 힘들었다. 순간적으로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다.

여러 글에서 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감정의 역할을 얘기해왔다. 상대에게 공감하라고 얘기하고 그 방법을 말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조그만 사건에 안절부절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앞서 내가 ‘분노’라고 불렀던 감정을 당사자 앞에서 발산하면 당시에는 시원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손해다. 아마도 누구나 아는 사실일 거다. 뉴스에 등장하는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생각해보라. 감정적 침해에 격하게 반응한 나머지 심지어 상대를 해치지 않았던가. 일례로 근래 한강에 시체를 유기한 모 사건 기사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손님에게 모욕당했다는 이유로 둔기를 사용해 살인을 하고 심지어 토막을 내 버렸던 사건이었다.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똑같은 일을 벌일 거라던 피의자의 외침을 뉴스에서 보면서 나는 저 사람이 앞으로 다가올 형벌의 시간을 진지하게 예상했을까 궁금했다.

 

어느날 나에게 벌어진 일은 크게 문제될 게 없던 사건이었다. 큰 소리로 싸우지도 않고 내가 참는 선에서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 후 나의 마음은 평정이 깨져 그렇게 며칠을 흘러갔다. 손해보는 장사를 한 듯한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이런 찜찜한 기분이 지속되는 게 싫어서 머릿속을 멤돌았던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다고 자부하던 나인지라,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고 생각했건만 현실은 어느 순간 진실을 알려준다. 우리가 항상 상대에게 동감, 연민, 공감 등 긍정적 감정을 지닐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날 닥친 분노처럼 그 화를 가라 앉힐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분노를 가라앉힐 방법은 있는가? 조심스럽게 나는 그 답으로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나를 신경쓰는 주변 사람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 예는 가족, 친구, 연인 등이다. 어떤 우발적으로 벌일 사건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벌 때문에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까지 염려를 끼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분노를 가라앉히라 말하고 싶다. 나의 경우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 담아두지 말고 사후에 적절히 발산하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건전한 방법으로 분노를 해소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운동을 한다든지, 좋은 음식을 먹거나, 사람을 만난다. 참는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언젠가 그 분노가 쌓여 엉뚱한 곳에서 터질지 모른다. 참는 게 항상 좋지는 않다. 증기를 배출할 출구를 마련해 놓는다면 밥솥은 터지지 않는다. 각자의 분노게이지를 조절해야 한다.

왜 우리는 분노를 잘 참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사소한 일에 신경쓰는가?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발적 살인 사건처럼 인간의 내면에는 죽음충동처럼 공격적 성향이 내재한다. 어떤 호인이라도 사랑충동만 지니고 있지 않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가 정적일리 없다. 그 관계는 역동적이다. 상대가 있어 시시각각 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면의 잠재된 정서뿐만 아니라 현실적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다치지 않고 더욱 중요한 나 자신도 다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발적인 분노를 피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정말 우연처럼 다가오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준비된 만남 내지 상황은 미리 대비하는 게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한여름 벌어진 사건에서 분노를 생각해봤다. 우리는 이성의 존재이자 감정의 존재이다. 이 둘을 잘 조절하는 자만이 성공까까지는 아니지만, 실패를 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반응형

'사업의 세계 > 거래를 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정한 협상이라는 환상  (0) 2021.04.07
잠자는 권리는 보호되지 않는다  (0) 2021.04.06
리더십의 조건  (0) 2021.04.04
너의 이름은?  (0) 2021.04.04
불청객  (0) 20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