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번역
원서보다 번역서를 선택하는 이유는 속도다.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하다 할지라도 모국어만큼 편하지는 않다. 그러니 해당 외국어를 읽는 데 무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번역서를 찾는다. 시간은 돈 아닌가.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 이용해야 하는 처지에 독해하는 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번역서의 질이 너무 떨어질 때 발생한다.
지난 몇 주 동안 한권의 책을 읽고 있다. 책 제목은 ⌜장단기 투자의 비밀(Long-term screts to short-term trading)」로 래리 윌리엄스(Larry Williams)의 책이다. 지난 2년간 가장 주의 깊게 읽은 책들은 대부분 트레이딩 관련 서적이었다. 그런 관심사 때문에 이 책까지 왔다. 게다가 이 책은 종종 다른 저작에서 저자를 언급하니 그 명성 때문에라도 읽고 싶었던 참이었다.
번역자의 문제인가, 편집자의 문제인가
기대를 갖고 책을 읽었지만 결론은 실망이다. 내용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도표와 그림에 대응하지 않은 부실한 번역에 오히려 이해만 더뎠다. 이런 반응이 나만의 불만이라면 좋겠지만 이 번역본을 향한 비판은 대개 비슷하다. 번역자를 향한 비판을 넘어 해당 출판사의 무성의한 편집도 도마에 올랐다. 이 번역의 문제가 번역자의 문제인지 편집자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번역 시간이 촉박해 책을 내다보니 벌어진 사단인지 확신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많은 이들의 시간과 돈을 이 책은 낭비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생업에 바쁜 이들이 원서를 찾아 읽을 시간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여유는 없다. 설령 원서 강독에 능통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내게 기쁨보다는 짜증을 선사했다. 그나마 이 책을 사서 읽은 게 아니라 빌려서 읽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뿌린 대로 거둔다
번역이 돈도 안 되고 시간만 걸린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평소 번역자에게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데 반대하는 사람이다. 들인 돈만큼 결과가 나오니 대략 뜻만 통한다면 나는 무리가 없는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론서 또한 마찬가지다. 전문 용어 번역 등에 설령 미진하다고 할지라도 무작정 번역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언제나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앞으로 그 번역서가 다시 번역돼서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떤 번역은 정말 유감스럽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해를 돕기는 커녕 방해하기 때문에 그렇다. 아마도 번역자는 이런 반응에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차후 다른 번역에 부담을 느낄지 모른다. 다만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는 좀 더 좋은 번역이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이니 당사자도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것을 알기에 나는 좀 더 너그러운 시선으로 번역자를 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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