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도서관 풍경

공부를 합시다 2022. 11. 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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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며칠 사이 다시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 보통은 책을 빌리려 갔지만 요즘에는 공부를 하러 간다. 오랜만에 들린 자율열람실 풍경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보통은 수험생들이 자리를 잡고 공부를 하는 곳인지라 더 그렇다. 나이가 훌쩍 들어 그들 사이 끼여 무언가를 한다는 게 이상하다. 게다가 코로나가 기승을 떨칠 때는 의식적으로도 사람이 몰린 곳을 피하려고 했으니 도서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친숙하면서 낯선 그런 곳이랄까.

보통 자율열람실은 앞서 말했듯 수험생 천지다. 통로 사이로 흘낏 본 그들의 책은 "준비서"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누군가는 공무원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교사를 대비하고 누군가는 자격증을 공부한다. 대개는 젊은 사람들이 미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지만 간혹 보면 희끈희끈 흰머리의 어르신도 보인다. 겉보기에는 정년을 맞이했을 것 같은데 그들의 공부는 끝난 것 같지 않다.

간혹 보면 눈에 익은 사람들이 있다. 수년 전 논문을 쓴다고 도서관에 자리잡고 있을 때 마주쳤던 방문객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도서관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공부를 하고 있다. 속으로 나는 그들이 반갑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안 됐다는 측은함이 든다. 아직도 결과를 내지 못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기 때문이다. 청춘의 한자락을 도서관 한 구석에서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도서관은 내게도 그들과 같은 장소였다. 명절을 제외하고 갈 곳이 없으면 나는 도서관에 자리를 잡곤 했다. 특별히 내가 준비하는 시험이 없다지만 오랫동안 학교에서 공부를 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다들 놀러 가기 바쁜 연휴 즈음에 공부라는 핑계로 인적 드문 열람실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나는 다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번에는 논문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지 못해 연구의 집중을 올리자니 도서관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공부를 할 수 있으나 다들 알지 않나. 집에서는 공부가 안 된다! 짧은 시간 공부하더라도 성과를 거두려면 다른 곳을 가야 한다. 그래서 내가 찾은 장소가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요즘 오랜만에 한 주제에 집중하여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날 읽을 책 한두권 싸가지고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있는 데 익숙해졌다고 믿었는데 사람들 사이 묻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치 동료 있냥 서로 힘을 복돋으며 공부를 한다는 착각에 빠진다. 물론 나는 그들의 사정을 모르고 그들 또한 나의 사정을 알리 없다. 다만 우리 모두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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