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낯선 방문

공부를 합시다 2022. 10. 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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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촌'. 이 말만큼 낯선 단어가 있을까. 솔직히 나는 옆 집에 누가 사는지 정확히 모른다. 그저 소음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 뿐이다. 혹시라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만 할 뿐 그들 사정에 관심 갖고 살지 않는다. 이런 일이 꼭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웃이란 소음으로 그들 삶의 인기척을 알릴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처럼 혼자 사는 이에게 이웃이 그렇게 신경 쓸 사람들인가.

 

어느 주말 토요일 아침이었다. 갑자기 대문 벨이 울렸다. 느긋한 아침을 즐기던 나는 무슨일인가 싶어 황급히 문을 열었다. 그런데 순간 나는 짜증이 났다. 옆집 할아버지의 얼굴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최대한 예의 바르게 방문 목적을 묻자 그 노인은 그냥 궁금해서라는 맥빠진 대답을 내났다. 토요일 아침의 갑작스런 방문에 화가 났던 나는 그 순간 화를 숨기기 힘들었다.

 

이번 한번이 아니었다. 언젠가 친절하게 한번 대화를 나눈 게 나의 실수(?)아닌 실수였다. 그저 의미없는 안부 인사였음에도 그 노인은 대화를 오해했나보다. 자신과 대화에 상당히 흥미를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의 대화에서 기억하는 내용이라곤 과거 젊은 날 자신의 과거를 자랑한 내용밖에 없다. 그조차 내가 생각하기에 한심한(?) 경력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과거라는 게 자신이 땅이 많았다, 저명한 누구를 잘 안다 등 함량 미달의 내용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는 애써 참으며 듣고 있었다.

 

이런 과거의 기억탓에 나는 애써 화를 진정시켰지만 퉁명스럽게 그 노인을 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잘 지낸다는 말과 함께 아침에 일이 있어 빨리 나가야 한다는 거짓말로 황급히 대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사소한 선의를 더 이상 배풀지 않겠다고 말이다. 비단 이번 한 번의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의 호의는 그 뒤에도 잊을 만 하면 그 노인의 낯선 벨소리에 다시 살아나곤 했다.

 

서너번의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내가 내린 결단은 그냥 무시하는 것이었다. 서너달에 한번씩 울리는 그 벨소리가 여간 신경쓰이지 않은 게 아니었다. 내가 알기론 그 노인은 혼자 사나 주변에 아들이 살고 있는 걸로 안다. 정기적으로 자식이 방문하는 것도 몇번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나의 시간을 빼앗는다 말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이웃 사촌'이란 지금은 쓸모없는 과거의 단어를 곱씹어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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