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어느 게으른 자의 변명

공부를 합시다 2022. 9. 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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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게으르게 산 게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어릴 때야 시간의 넉넉함에 버거운 시절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조급해진다고 할까. 거기에 더해 시간이 아깝고 혹시라도 내 삶을 계획 없이 산 거 아닌가라는 자책감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나는 안다. 그래봤자 흘러간 물은 되돌릴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럼에도 가끔은 걱정이 몰려오는 것은 어쩌지 못하겠다.

 

이런 삶의 회의가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의문은 누구나 들 수가 있고 심지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 역시 번 아웃 뒤 고개를 저으며 자신을 책망하곤 한다. 성실히 살았다고 믿었는데 그 길이 자신의 삶의 목표와 배치되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아마도 나도 그런 경우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살았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현타가 온 경우다.

 

내가 살면서 가장 신경 쓴 곳은 공부였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훗날 학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었다. 적어도 20대 후반까지는 이런 목표를 차근차근 밟았던 것 같다. 남들은 취직에 열중할 때 대학원을 진학했고 졸업 논문을 쓰고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집안 사정상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취업준비를 했지만 나이 많고 인문학 전공의 취준생을 받아 줄 곳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첫 직장을 잡았지만 문제는 눈높이였다. 나는 항상 불만이 많았다. '왜 내가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라는 물음이 항상 따라다녔다. 평소라면 높은 동기부여는 그 사람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현실에 너무 치이면 그 동기는 좌절로 변해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하지만 그 사이 사업도 실패해보고 큰 실연도 당해보고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큰 파고도 겪어보며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도전한 것은 공부였다.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한 것이다.

 

벌써 2번째 대학원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나간다. 박사 과정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또 하나의 석사를 마치고 나니 이제는 정말 현실적인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유독 경제적으로는 애써 당면 과제를 외면하고 있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으면 없는대로 산다지만, 없으면 불편한 것이 돈이다. 게다가 주변 누군가의 성공은 솔직히 자극이 되는 게 현실이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이다. 직장을 다녀보겠다는 선택지는 잊은지 오래고 오로지 나의 능력을 레버리지 삼아 일을 해보겠다는 생각뿐이다. 지금까지 공부만 신경썼지 그 결과를 뒤딤돌 삼아 경제적 부가가치를 늘려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매일 나는 제안서를 쓴다. 그것이 강연이든 출판이든 일단은 쓰고 제안해본다. 그러고보면 게으른 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노력밖에 없는 듯하다. 그조차도 하지 않으면 무얼 하겠다는 말인가. 적어도 노력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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