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악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2020)

공부를 합시다 2022. 7. 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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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대상은 고민하기 힘들다.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관념에 불과하고 따라서 우리 시선을 오래 잡아두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추상적 대상은 끊임없이 우리 주변을 배회하기에 외면하기 힘들다. 아마도 '악'이란 대상은 그런 거 아닐까. 교과서에 나오는 관념으로 치부하지 말기를. 당신이 악인을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선과 악의 존재를 고민하게 될 테니까.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Pollock)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2020)(이하 '악마'>는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사건을 다룬다. 제목만 봐서는 이 영화의 장르를 악령이 등장하는 공포물로 착각하기 쉽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인(?) 악을 다루는 드라마다. 대단한 스펙타클한 사건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 모르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평범한 악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 악의 현현이 미국 시골 마을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영화 내내 긴장을 놓치기 힘들다. 영화가 보여주는 악마는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지녔다. 그러기에 이들의 악행은 은밀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 그리고 맹목이 버무려지면서 악의 시간은 지속된다.

 

<악마>에서 모든 인물은 뿔뿔이 흩어져있다. 가족을 이루지만 그저 형식적인 대화만 오갈 뿐이다. 게다가 이들이 기대고 있는 신앙은 거의 맹목에 가깝다. 악마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굳이 한가지 고르자면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믿음이 원흉이다. 특히 마을 공동체를 아우르는 교회의 목사에 대한 믿음은 영화에서 거의 굴종에 가깝게 묘사된다. 사람들은 그저 목사의 설교에 귀기울일 뿐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능력따위는 없다. 오직 주인공 아빈 러셀(톰 홀랜드)이 여기에 의문을 품고 행동할 뿐이다.

 

신의 이름을 빌어 아내를 살해한 목사, 성적 도착증에 빠져 살인을 일삼는 범죄자, 뇌물을 받고 범죄자의 뒷처리를 해주는 경찰 등 이 영화 속 악마의 얼굴들이다. 이들의 악행은 이야기 끝에 결국 그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어떤 개운함도 관객에게 선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딘가에서 이들만큼 악한 누군가가 활보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을 불러온다.

 

영화 말미 주인공 아빈은 차를 얻어타고 고향을 떠난다. 흔들리는 움직임에 맞춰 그는 서서이 잠에 빠져든다. 마치 지금까지 벌어졌던 살인을 잊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선잠에서 갑자기 깨어날 때 그는 깨달을 것이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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