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비혼의 조건

공부를 합시다 2022. 6. 2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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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독일의 잡지를 번역해 비혼자의 삶을 전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분명한 대목은 인터뷰이였던 비혼자들이 자신의 삶에 굉장히 만족스워했다는 점이다. 경제적 풍요와 함께 자신의 취미 생활을 잘 영위하는 등 그들의 삶의 질은 꽤나 높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렇기에 그들의 내외적으로 건강한 삶이 부러웠다. 다만 그들도 은퇴 이후 삶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처럼 그들이 경제적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독일의 비혼자들이 염려하고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사회적 관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데서 오는 문제였다. 경제활동을 영위한다고 하면, 특히 직장을 다닌다고 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다만 은퇴 이후에는 그들 삶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사회적 관계가 없어지면서 오는 상실감을 걱정하고 있었다.

 

문득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싶었다. 요새는 스스로를 비혼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딱히 결혼에 매력을 못 느끼고 혼자 사는 삶을 기꺼히 선택한다. 그런데 젊을 때는 상관없는데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면 인간 관계가 좁아지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이런 사정이 결혼을 한 사람들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결혼을 하면 아무래도 가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인지사정이다. 그러니 이들 또한 인간관계가 좁아진다.

 

나의 경우도 비슷한 괘적을 지나는 것 같다. 굳이 사회적 관계를 넓히긴 보다는 기존의 관계를 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그 이유에는 외연을 확장하는 데서 오는 피곤함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시달리기 보다는 자신의 시간을 충실히 살고 싶다는 욕망이 더 크다. 그러니 젊을 때처럼 동호회와 같은 이런저런 모임에 가기 보다는 개인적 취미를 가지고 논다.

 

그렇다고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을 피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가끔은 친구와 같은 지인을 만나는 것이 필요하다. 허나 이조차 말 그대로 가끔이지 그 빈도를 늘리고 싶지는 않다. 그들 또한 바쁘지만 나 또한 바쁘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 관계라는 조건이 양면이 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귀찮다. 이러니 인간은 모순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혼자 살기 위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는 인간 관계에서 그 조건을 찾지만 비혼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넓은 관계보다는 깊은 관계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나이들수록 자신과 적합한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기에 그렇다. 게다가 사회적 배경이 다르니 자칫 잘못하면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온갖 부정적인 면들이 노출된다. 솔직히 사기만 안 당하면 다행이다.

 

오늘도 나는 건강한 삶을 꿈꾼다. 혼자 산다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건강한 삶, 이거야말로 비혼의 조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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