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90분 영화

공부를 합시다 2022. 5. 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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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를 보는 일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냥 스마트폰이든 컴퓨터든 텔레비전이든 극장에 가든 스크린만 있으면 그만이다. 이미지 범람의 시대가 우리가 영화 보는 일을 일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전히 극장에 가는 약속은 때로 특별한(?) 일이지만 영화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보자면 그저그런 사건인 셈이다.

 

지난 몇 달은 딱히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말인듯 싶다. 해야 할 일도 많은 데다가 영화가 상영하는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 특히 후자의 이유가 내게는 영화를 보는 것을 꺼리게 만들었다. 그냥 영화가 상영하는 그 시간을 진지하게 보내는 게 힘들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딱히 취미도 없는 내게 영화를 보는 일은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알차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앞서 고백했듯이 요즘에는 고역(?)이다. 아마도 나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듯 싶다. 2시간 정도의 시간을 견디기에 나의 정신이 주변 사물에 정신을 빼앗겨버린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나는 수없이 딴짓거리를 하며 영화를 본다(?).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심지어 잠시 자기까지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원인은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에 내가 너무 노출되어서 나타나는 일인듯 싶다. 10~20분 동영상 시간에 너무 길들어져 1~2시간의 영화 시간은 지루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나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를 볼 때 최대한 짧은 시간의 영화를 찾아본다. 영화의 완성도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은 시간이다. 작품의 완성도는 봐야 확인된다. 물론 그것조차 리뷰를 보고 평점을 보는 등 다른 이의 평가에 의존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 일단 온전한 평가를 스스로 내려보려는 욕심이다. 그래서 뒤늦게 후회할 때도 있기는 하지만.

 

재미난 사실은 나와 같은 관람객이 요즘은 많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카테고리에는 '90분 영화'라는 범주가 있다. 짧게 끝나는 영화를 찾는 조급증 관객을 위한 추천 목록이다. 영화의 장르, 시기, 국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중요한 기준은 시간이다. 빠르게 영화를 해치울 사람을 위해 이 목록은 존재한다.

 

문제는 영화의 시간이 아니다. 영화가 길든 짧든 그 시간을 탓할 필요는 없다. 범인이 있다면 나와 같은 조급증 환자를 만든 미디어 환경이다. 이런 현상은 영화 선택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지금 쓰는 블로그 글을 보자. 단락을 채우는 문장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복문이든 중문이든 긴 문장은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가 너무 시간의 속도에 민감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양에만 급급하고 질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시대에 산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모든 것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우리는 주의력 결핍의 시대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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