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자기 배려의 기술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공부를 합시다 2022. 4. 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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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전부터 '가스라이팅'이란 용어는 대중에게 폭넓게 각인된 단어인 것 같다. 미디어에서 전하는 사건사고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이제는 힘들지 않을 정도니까 말이다. 최근에는 '가평 계곡 살인사건'이 대표적 가스라이팅 사례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에게 제대로 저항해보지 않고 피해자는 사망 직전까지도 무력하기만 했다. 목숨을 잃을 것을 뻔이 알면서 계곡에 몸을 던졌을 정도다.

 

처음에는 가평 계곡 살인사건에 관심이 없었다. 단순 보험 살인 사건으로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지난 주 우연히 본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화 통화 한토막은 나의 생각을 바꿨다. 내가 들은 전화 통화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원하는 돈을 보내지 못해 힘들어하고 자책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 짧은 통화에서 피해자의 정서적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언론에 전하는 피해자의 경제 사정을 들어보니 한때 예금 자산도 수억원이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 그런데 결혼 이후 본인은 아파트에서 나와 월세로 살며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힘들어졌다. 상식적인 사람의 눈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여성은 끝없이 돈을 요구하고 남성은 기본적인 생활도 힘들면서 그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다.

 

도대체 피해자는 어떻게 저 지경이 될때까지 관계를 이어왔을까. 제3자는 모를 일이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사진 속 남성은 순박하게 보이기만 했다.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를 탓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하다는 것이 이처럼 바보라는 동의어로 들리는 일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교제 과정에서 그 남성은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이 여성이 자신을 버릴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녀의 청을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망각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리고 호구처럼 보이는 행동을 생전에 멈추지 못했다.

 

사실 가스라이팅이 남녀관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 친구, 직장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이 벌어질 수 있다. 이때 피해자가 가해자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일의 출발은 내가 보기에 이렇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관계를 평가해보는 것이다. 자신보다 중요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설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말이다.

 

누군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착취와 억압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가스라이팅의 징후일 것이다. 그런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어찌 상대의 고혈을 빨아먹는 지경까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가스라이팅 사건을 들을 때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하다. 미디어에 나올 정도로 저런 인간들이 사회 곳곳에 있다는 소리처럼 들리기에 그렇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가장 사랑해야 할 대상은 연인도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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