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개와 늑대의 나날들

공부를 합시다 2021. 10. 2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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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언제 자신이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가? 주민등록증이 나왔을 때, 또는 성인식날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았을 때, 또는 결혼을 할 때? 뭐 답은 각자가 다를 것이다. 어쩌면 이런 우문같은 질문을 던지는 나의 의도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나는 단순히 일정한 생물학적 나이가 됐다든지, 관혼상제와 같은 의례를 통과했다든지와 같은 기준이 어른이  됐다는 징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순간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네 삶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 표현했듯이 "복잡하다". 나는 이런 삶의 미묘한 순간이 '개와 늑대의 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들 알다시피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황혼의 시간이다. 낮의 붉은 색과 밤의 푸른색이 만나 개와 늑대가 구별이 되지 않는 경계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모든 것이 모호하고 애매하다.

 

그나마 하루 중 개와 늑대의 시간은 순간에 그친다. 그러나 우리 삶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평생 지속된다. 그래서 나는 개와 늑대의 나날들이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의 경계가 어느 순간 흐릿해져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하게 흑과 백의 시간을 온전히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양극단에서 줄다리기를 계속 해야 하는 처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각자가 저 순간에는 고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삶의 정체성에 따라 결정을 요구받게 된다. 적당히 묻어 갈지 아니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지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꽤나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진정한 나의 모습을 숨기는 데 더 능숙해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피아 식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판단중지의 시간이 길어졌다. 분명한 태도를 유보하고 애매한 자세를 취하기 일수였다. 술에 물 탄듯 물에 술 탄듯 태도로 사람을 대했다. 아마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나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선한 행동이 선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는다. 잉과응보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세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선의가 적대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어른이 돼갔다.

 

오늘도 개와 늑대의 날이 지나간다. 모든 것이 투명했던 어린 시절은 이제 없다. 세상은 복잡하니 거기에 맞춰 유연해져야 한다. 아마도 그렇게 어른이 되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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