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자기 배려의 기술

접속 불안에 시달리십니까?

공부를 합시다 2021. 3. 31. 21:51
반응형

 

최근 들어 인터넷 사용이 많아져 고민이었다. 누가 강제하지는 않았지만 공부 때문에, 일을 위해서, 그리고 가장 많게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접속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스마트폰을 꼽아야 하겠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 주 스크리닝 타임을 체크해보는데 하루 2시간 정도의 시간을 스마트폰 사용에 할애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긴 시간에 깜짝 놀랐다. 물론,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 라디오를 듣기 위해 접속한 일과가 그 배경이다. 거의 1시간 정도를 꼬박꼬박 스마트폰으로 청취하거나 시청하니까 말이다. 그래도 과도하다는 느낌은 어쩌지 못하겠다. 스마트폰 외에도 노트북 등 접속시간까지 따져 본다면 그 시간의 양이 어마어마할 듯하다. 특히, 일과 시간 이후 텔레비전 대신 여가를 책임져 주는 유튜브도 여기에 한 몫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스마트폰이든, 노트북이든, 데스크답이든 인터넷 접속을 줄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첫 출발은 몇몇 SNS의 간헐적(?) 단식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비롯해, 최근 들어 시작한 브런치 등을 포함해 SNS의 접속 빈도를 줄이기로 결단했다. 여기에 결정의 계기가 있다. 포스팅을 하고 나면 다음에 따르는 필수 과정이 있다. 바로, 관심의 확인이다. 좋아요 개수, 댓글, 접속수 등 모든 것이 신경 쓰인다. 그러다 보니 체류시간 외에도 접속 빈도가 너무 잦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잠시 쉬기 위하여 공원을 걸어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이들 SNS를 접속했다. 누가 관심갖는다고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들락날락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규칙을 정하고 그 시간을 통제한다.

접속의 시대는 불안의 시대다

모든 일이 그렇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리고 시작이 가장 어렵다고. 개인적으로 중독이란 스스로가 조절가능하지 않다고 하면 중독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의지를 벗어난 강박적 행동은 중독인 셈이다. 무한 퇴행의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주변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다행히 내게 인터넷은 그 정도의 중독은 아닌 듯하다.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통제가능하다는 확신이 든다. 그래도 힘들기는 힘들다. 허전하다고 느끼는 그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허나 참으로 웃긴 일이다. 원래 그 시간은 비어있어야 하는 시간인데도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채워야 하는 시간으로 간주했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디지털 단식.’, ‘디지털 디톡스’ 등과 같은 용어에서 드러나듯 접속불안증후군은 나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과도한 인터넷 접속은 효용보다 손실이 더 크다. 일의 집중을 떨어뜨리고 사람과 대면 시간을 줄여 버린다. 가족 사이에서, 친구 사이에서, 그 밖의 관계에서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디지털과 완벽한 절단은 불가능하다는 현실이다. 진정한 문제는 스스로가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 ‘주목’에 너무 목말라하는 상황이 골칫거리다. 앞서 언급한 ‘좋아요’ 가 대표 사례다. ‘싫어요’는 상관없다. 그것은 오히려 접속을 방해한다. 이 단순한 선택지를 확인하려 나는 얼마나 많이 접속했던가. 그 숫자에 매료돼 로그인을 반복했고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데 우스운 일이다. 고백하건데 내가 매료된 그 숫자도 얼마 안 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나의 관심사는 ‘관계’이다. 사회적 관계에 초점을 두고 이 관계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거리다. 어느 글에서 고백했듯 나이가 들면서 이 관계 폭이나 깊이 등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게 보인다. 참으로 애석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를 야기한 원인 중 하나는 인터넷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넷상에는 놀거리가 많고 할 일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불안할 틈이 없다. 접속하고 있다는 환상을 계속 주입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 접속의 관계가 의심스러웠다.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 할지라도 피와 살을 지닌 인간과 만남 보다 더 실재하는 관계일리 없다. 그래서 나는 문을 박차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뜨거운 햇살이 비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곳 어딘가 누군가를 만나러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