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무지라는 잘못

공부를 합시다 2021. 4. 16. 17:18
반응형

주말에 짬을 내 밀린 시사 프로그램을 하나 봤다. 분양호텔 사기(?)를 당해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를 다룬 KBS의 <시사기획 창>이었다. 느슨한 규제탓에 우후죽순 만들어진 분양호텔이 제대로 영업이 이뤄지지 않아 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많았다. 힘들게 일하며 번 돈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 당사자는 상실감이 이루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사방송의 결론이 특별(?)할 리 없다.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되집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는 정도다. 그렇다보니 피해자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피해 복구는 결국 당사자 사이에서 해결할 사안으로 남아버린다. 문득 나는 수많은 피해자 인터뷰를 보면서 그들에게는 과연 책임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가해자의 잘못이 가장 크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다. 그러나 과연 피해자는 무지에 책임이 없을까? 상품을 꼼꼼이 따져보지 않고 덜컥 계약서에 서명한 그 책임 말이다.

작정하고 상대를 속이려고 달려드는 사람을 당해낼 방법은 없다. 누군가 내게 사기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다만 조심할 뿐. 그 외에 마땅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금전적 계약을 맺어야 할 때는 서두르지 말고 치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언제나 돈이 모이는 곳에 사기꾼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선의지를 가장해 접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가. 계약 전에 저들도 그랬을 것이다.

이 경우 법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약자에게는 냉혹할 뿐이다. 거대 로펌의 변호사를 사 수년간 소송을 끌고 재산을 은닉하는 자를 당해날 재간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 법은 강자의 이해를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이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법정에서 정의가 이뤄지길 기대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환상을 깨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마땅히 공부가 되야 할 것이다. 자신의 무지 때문에 벌어지는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응형

'원고지 >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죠  (2) 2021.04.29
소음에 대처하는 방법  (7) 2021.04.28
버티며 쓴다  (0) 2021.04.14
코로나 블루의 시대  (2) 2021.04.12
자본주의는 생활이다  (2) 2021.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