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낙서장

노동자를 위한 사회는 없다

공부를 합시다 2021. 4. 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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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청의 장점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뜻밖의 영상을 추천해준다는 점이다. 언제나 훌륭한 큐레이션 기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소개되는 동영상을 눈으로나마 훑어보게 된다. 오늘 나의 시선에 들어왔던 동영상은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클립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19탓에 권고사직을 당한 사람들의 인터뷰였다. 영상에 빠져들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다니는 사람대로, 자영업과 같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그들대로 다 힘들다. 누가 더 힘들고 누가 더 쉽네 따지는 일은 무의미한 일일 터이다. 나 또한 강의가 많이 줄어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렇게 본다면 퇴직한 사람이 뭐 대수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 사람이 겪었고 경험할 일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떠난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을까?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지점은 퇴직 그 자체가 아니었다. 정리해고하는 과정 중에 그들이 입은 상처가 관심사였다. 4명의 인터뷰이가 그들의 사연을 담담하게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며 전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여성이었고 퇴사 과정 중에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모두 분개하고 있었다. 회사를 짤렸다는 사실에 낙담하고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해고 통지와 함께 그날 회사를 떠나야 했다는 사실에 화를 참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간의 배려라도 기대했건만 그것은 그들만의 소망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이해가 됐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 딱 한번이기는 했으나 사람 손쉽게 쓰고 손쉽게 짜른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저 퇴사하기 하루 전날 얘기를 했다면 그런 생각도 안 들었을 것이다. 당일 퇴고 통지, 이것이 사람을 화나게 했다. 그럼에도 웃으며 나왔다. 심지어 악수까지 하면서, 속으로 욕은 할지언정. 그리고 결심했다. 다시는 이런 꼴 당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소위 노동자로서 삶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마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저 사람들의 감정은 그때 나의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예의라고는 눈꼽만큼이나 찾아볼 수 없는 회사에 화가 나 처음에는 그 분노를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쏟아붇고 있었을 터이다. 그럼에도 저들은 카메라 앞에 나설 용기를 갖췄으니 사정이 나쁘다고 보이는 않는다. 적어도 당시 사건을 정면으로 돌아볼 만큼의 의지는 있기 때문이다. 엎어진 물은 되돌릴 수 없다. 과거가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게 나둬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저 사람들은 새로운 직장을 구할 터이고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던져준 사회적 재앙 앞에서 다시 느끼는 사실이 있다.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더 정확히는 ‘노동자를 위한 회사는 없다’ 20-30대까지 젊다는 이유로 어떤 회사를 다니건 이직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 거다. 어느 순간 그 기회는 사라지고 퇴직의 공포에 선 자신의 모습이 다가온다는 사실 말이다. 노동자란 시간을 파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팔다가 더 이상 누구도 그 시간을 사주지 않은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모든 노동자는 알아야 한다. 자신의 시간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결코 회사가 당신을 챙겨주지는 않으리라는 것. 이런 진실을 안다면 그들은 더 이상 쓸모없는 분노에 시간을 낭비하고 낙담하지는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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