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고양이에게서 배운다: 철학의 쓸모는 어디?

공부를 합시다 2023. 3.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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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대학과 대학원까지 철학을 전공한 나는 항상 불만족스러웠다. '이 놈의 철학이 대체 무슨 쓸모란 말인가.' 이유는 단순했다. 거창한 가치를 갖다 붙여도 학교 밖에서는 무력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학원에서는 관심 주제를 공부하기는 했으나 그 또한 삶의 문제를 실제로 해결해주지 못했다. 이처럼 철학을 학부와 대학원까지 공부한 이조차 그 쓸모를 고민하는데 일반인은 어떠하겠는가.


 
그나마 한때 '인문학의 위기'니 많이 떠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위기를 외치던 시절도 그 내면을 보자면 학교에 적을 둔 선생들의 위기였지 인문학 자체의 위기는 아니었다. 문제는 언제나 밥벌이였다. 자리를 잡은 교수야 그나마 다행이지만 학교에 생활을 위탁한 연구자들에게 정말 위기였던 셈이다. 지금은 그조차도 신경쓰지 않은 것 같지만. 여하간 사람들은 철학에 관심이 없다.
 

이제는 무관심이라고 해야 할 이 현실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이미 서두에서 내가 고민했듯 어떤 쓸모(?)가 없다는 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대학 때 듣던 교양 철학이 과연 어떤 해답을 줬을까. 솔직히 그런 수업이 상식 이상의 무엇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해답을 찾기 위하여 철학을 공부한 이에게는 약간의 섬광 같은 해답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철학은 어떤 진지한 문제에 설득력 있는 해답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누군가 '주고 있다'고 응답한다면 나는 '글쎄요'라고 반문하고 싶다.
 

 

고양이가 철학을?

요새 막간의 시간을 내 읽은 책 한 권이 있다. 존 그레이의 「고양이 철학」이 그 주인공이다. 정치철학자인 저자가 고양이에 빗대 '인간 동물(human animal)'의 문제를 유쾌하게 답변한 책이다. 이 책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진술로 요약될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서 벗어남으로써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지는 반면 고양이는 자기 모습 그대로 행복하다." 이 주장 또한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사고의 결과라고 생각되지만(고양이가 행복하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이 또한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사고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불만족스럽다!
 

프로이트의 「문명 속의 불만」처럼 인간은 충동을 억제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 대가가 문명이다. 얻은 게 있으면 잃은 게 있는 법이다. 그런데 충동을 억제하는 삶이란 본성에 어긋나니 문제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복이란 미사여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일종의 도피처인 셈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행복이란 지극히 이 사회 속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단순한 자기 만족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설령 그 '자기 만족'이라 부르더라도 이미 타인에게 영향받은 만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복의 조건은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다.

 

의미있는 대답

철학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 질문은 철학적 질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인에게 그 철학적 질문은 저 「고양이 철학」 저자처럼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선사하는 문제여야 한다는 것이다. 단, 구체적인 맥락에서 대안을 제공하면서 말이다. 철학이 일상과 멀어진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다. 지금 여기 내 삶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답변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탈맥락화는 일반인이 철학에 거리를 두게 한다. 보편에만 치우쳐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하늘에서만 놀기에.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다시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진자같은 운동에서 철학은 빛을 발휘한다. 어떤 우회를 거쳐 우리는 철학적 질문에 다가갈 것인가. 우리 삶의 조건을 설명하고 거기에 더해 해결을 제시할 수 있는 철학이 있다면 일반인이 원하는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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