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글쓰기/글쓰기

AI 시대 작가의 운명

공부를 합시다 2023. 3.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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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작가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챗지피티(ChatGPT)는 이제 저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놀라운 속도로 글을 쓰고 생산물을 토해낸다. 뉴스에서는 이 기계 저자가 올린 아마존 전자책을 보여준다.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불분명하나 수많은 장르소설이 상품으로 이미 전시돼 있다(실제로 얼마나 팔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전에도 소위 저작 도구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일부의 관심만 있었을 뿐 챗지피티처럼 대중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소수가 알고 이용하는 보조 장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연일 나오는 보도에 따르면 이 문제적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기사를 작성하고 심지어 문학, 소설 내지 시를 쓴다.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쓰기를 대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인간 작가와 AI 작가는 어떤 차이가 있단 말인가. 종래는 그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고 할 수 있었던 창의성이란 불리는 영역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그 창의성이라는 부분도 점점 그 범위를 축소하는 것 같다.

독자의 반응

이 AI 저자는 특히 단신 기사와 같은 정보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기자를 대체한 지 오래다. 이제 돈 많이 들고 유지가 필요한 인간 기자 따위는 필요 없다. 실제로 이미 이런 기계가 생산한 단신기사는 여러 미디어에서 이미 선을 보이고 있다. 어차피 그런 기사에 깊은 통찰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정보, 그것도 빠른 정보를 생산하면 대만족이다. 미디어 회사 입장에서 생산을 기계적으로 처리해주니 얼마나 효율적인 기계 사원이란 말인가.

 

종래 미디어에서 생산되는 저품질 기사는 더 이상 AI와 경쟁하지 못한다. 어차피 그들은 제목 장사를 해왔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운명에 별로 동정을 느끼지 못하겠다. 다만 창작의 영역에서 이 기계가 인간과 어떻게 경쟁할지 궁금할 뿐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도 일정한 수준까지 올라선 AI창작 기술이 과연 독자의 호응을 받을 지 궁금하다. 적어도 일정 수준에 올라선 것은 분명하다. 다만, 잘 팔릴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작가의 욕망

이런  AI기사를 볼 때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동화'라는 거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나라는 의심이 든다. 기계가 모든 생산을 대체하고 혜택을 가져갈 꿈을 꾸면서 말이다. 물론 그 꿈을 꾸는 주체는 자본이고 혜택은 독점적일 테지만. 이런 시절에 글을 쓰는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단순한 학습의 결과로 창작물을 생산하는 기계와 다르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버튼 하나로 창작을 수행하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있을까. 이곳 블로그처럼 끊임없이 생산하고 그저 양에 치우친 글만을 생산한다면 그런 능력은 요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글을 토해내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꿈을 꾼다. 그 꿈이란 단순히 생산에 몰두하는 기계의 모습이 아니라 독자를 웃고 울릴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열망이다. 개성이 들어가 있지 않은 글은 죽은 글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작가의 미래 운명이 기계 작가라고 믿지 않는다. 숙력된 기술은 필요하나 그것은 필요조건일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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