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자본의 폭주: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2023)

공부를 합시다 2023. 11.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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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위력

습관적으로 손이 가는 영화가 있다.


 
무엇보다 전작의 흥행에 힘입어 시리즈로 나오는 영화다. 일단 영화 브랜드의 힘을 믿고 보는 것이다. 아마도 영화 <분노의 질주(The Fast and the Furious)>는 그런 시리즈일 거 같다.



주말 시간 뭘로 시간을 보낼까 선택한 작품이 바로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이하 <라이드 오어>로 지칭>(2023)였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OTT에 올라왔기에 주저없이 선택했다.

 
아마도 이렇게 무의식적 영화 보기의 장점(?)은 무감각한 영화 보기이다.


 
'킬링 타임'이라는 미명 아래 이런 영화를 종종 본다. 모든 영화를 성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애당초 진이 빠지는 작업이다. 이런 영화 보기를 실천하면서도 질문이 들 때가 있다. 왜라는 질문을 단서 삼아 영화를 색다르게 보는 것이다.

가족이란 동력

이 자동차 액션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이다.
 


영화를 여는 장면도 주인공 도미닉 토레도(빈 디젤)이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유사가족인 친구들과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시즌 내내 도미닉이 개고생(?)을 하는 이유는 거창한 미명이 있는 게 아니다. 다 가족 먹여 살리고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게 영화는 동력을 얻는다.

 
악당들은 언제나 도미닉의 (유사) 가족을 위협하고 도미닉의 가족(앞으로 '가족'이라 쓸 때 도미닉의 유사 가족을 말한다)은 여기에 대항해 미션을 수행한다.


 
이 영화 시리즈가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런 가족 사이 끈끈한 애정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설령 주인공이 시리즈 첫 영화에서는 자동차 도둑이었다할지라도 그런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관객은 시선의 일치와 지지를 보낼 수 있었다.

유사가족의 확장

재미난 지점은 도미닉의 가족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나는 이런 도미닉의 가족을 '유사 가족'이라 말했는데 피만 섞이지 않았다 뿐이지 이들은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 심지어 죽은 친구를 살려내고 시리즈에 복귀시키는 무리수(?)를 발휘한다. 이런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가능했던 이유는 '우리는 가족 아닌가.'라는 이유 외에 더 있을까 싶다.


 
시각적인 쾌감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라면 이 정도는 관객들이 눈 감아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가족 이야기는 이 시리즈를 이끌고 가는 주요 서사다.


 
이런 대가족 이야기가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지만 시리즈가 <라이드 오어 다이>에 이르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과거 도미닉과 적대했던 악당들이 이 가족의 조력자로 돌변한다.



이번 편에서는 사이퍼(샤를리즈 테론)이 그런 예다. 물론 그녀가 악당으로 어느새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악당이 가족의 가치에 이토록 쉽게 감화(?)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물리적 한계는 없다

과거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그나마 '현실적인' 자동차 추격 신을 보여줬다.


 
과거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마다 극장을 나설 때 '역시 자동차 액션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해.'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던 기억이 있다.


어느 순간 이 시리즈의 액션 신은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는다. 그 때문에 가족은 허울만 남고 액션 신만 남는다.

 
스케일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물리적 스턴트 신으로는 부족하다. 자연스럽게 컴퓨터 그래픽에 의존한 액션 신이 과도하게 쓰이고 그 정점은 바로 영화 <라이드 오어 다이>이다.



현란한 자동차 추격 신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정도의 컴퓨터 그래픽 의존을 당연시할 것이다. 오히려 이런 작업을 선보일 만한 스튜디오는 할리우드밖에 없다고 좋아할지 모른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자본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3억 4,000만 달러, 1달러를 1,200원으로 환산해 계산하면 4,000억을 넘는 예산을 들어 영화를 만들었다.

자본의 과시

주인공들을 맡은 배우들의 면면은 굉장히 화려하다.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들 알 만한 배우다. 다른 영화에서는 각자가 주연을 맡았을 배우를 한자리에 불러 모을 만한 영화 자본은 할리우드밖에 없다.


 
<라이드 오어 다이>는 자본의 힘을 과시하는 영화라고 말할 만하다. 그리고 영화의 미친 액션만큼이나 돈을 들인 티를 팍팍 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느 순간 그 힘이 반감되고 있다.



너무 화려한 그래픽은 어떤 관객에게는 코웃음을 유발시킨다. 이제는 하다하다 저련 액션 신을 만들었을까 의문이 들게 한다. 현실감이 어느 순간 확 떨어져 오는 반응이다.


 
이 시리즈가 장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투자자에게 돈을 벌게 해주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인 흥행에 힘입어 이 영화 시리즈는 재생산된다. 죽었던 친구가 되살아나고 가족이 점점 불어나는 데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바로 돈을 벌어주기에 그렇다.

가족과 자본의 재생산

가족의 재생산과 자본의 재생산. <분노의 질주> 시리즈야말로 양립불가능할 것 같은 이 둘의 조합을 보여주는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자본의 폭주'를 떠올렸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하는 자본의 위력을 본다. 언제까지 이 영화 시리즈는 계속될 것인가. 계획대로라면 다음 11편을 끝으로 그 거대한 서사를 끝마친다고 공지가 돼있다.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 영화가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준다면 리부팅이 될지 말이다.

 
확실한 사실 하나 더. 아마도 시리즈의 다음 영화도 어떤 기대를 갖고 보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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