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좋아하나요
∙ 어떤 장르는 별로 흥미가 없는데 그 이유야 취향 때문일 것이다. 내게는 아마 역사극 장르가 그런 분야다. 아무래도 역사적 사실을 바꾸지는 못하니 결과가 뻔한 이야기가 호기심을 반감시킨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으니 어떤 사극은 흥미를 유발한다.
∙요새 공중파에서 '정통사극'이란 제목을 달고 방영되는 드라마가 있다. 바로 KBS의 <고려거란전쟁>이다. 제목대로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루는 역사물이다. 오랜만에 사극으로 복귀한 연기자 최수종이 '강감찬'을 맡아 열연하고 묵직한 중년 연기자들과 젊은 세대의 연기자들이 앙상블을 이룬다. 게다가 조선 위주의 역사물을 벗어나 오랜만에 고려를 다룬다.
다시 돌아온 대하사극
∙이 드라마를 수식하는 단어는 흥미롭다. 통상 '정통 사극'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대하사극'이란 표어가 따라다닌다. '대하(大河)'란 한자어 그대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강마냥 내용 전개의 길이가 길고 규모가 크다는 의미에서 붙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렇기에 <고려거란전쟁>은 무려 10여년간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룬다. 방송사는 이 드라마에 제작비를 270억 정도 투입해 심혈을 기울여 선보일 예정이다.
∙저 정도의 제작비가 요새 공중파 드라마치고 많은 예산인지 잘 가늠이 안 된다. 그러나 다른 방송사 SBS의 <7인의 탈출> 제작비가 무려 460억 정도가 된다는데 그에 비하면 많은 것 같지도 않다. 아무래도 KBS가 공영 방송국이고 근래 수신료를 중심으로 불거진 논란 때문에 그 이상의 제작비를 투자하는 데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협찬이 거의(?) 없다. 제작비 거의 전부를 방송국이 투자한 셈이다. 요약하자면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는 드라마이다.
요새 대세 사극
∙KBS의 전통사극과 비교해 근래 막을 내린 MBC의 <연인>은 퓨전사극이라고 이름붙일 만하다. 허나 역사극이기에 주요 배경은 충실히 역사적 고증을 따른다. 다만 주인공들이 역사적 인물이 아닐 뿐이다. 아무래도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이유는 현대적 해석 덕분이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티카타카를 연상케하고 현대극의 주인공들의 대화라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사극치고는 높은 시청률을 답보했으리라 본다.
∙역사극을 바라보는 나의 입장은 그 사극이 '전통사극'이건 '퓨전사극'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역사적 고증의 정도가 다를 뿐 결국 지금 여기 시청자에게 얼마나 호소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자의 사극은 나이가 있고 역사물에 심취한 관객에게 호소하리라. 그에 반해 후자의 사극은 어리고 가벼운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을 끌어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킷 시청자가 두 드라마는 다르다.
공중파의 변신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려거란전쟁>이 흥미롭다. 그 이유는 공영방송의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거쳐 동시 방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독점을 고수하던 KBS조차 자사 콘텐츠를 해외 플랫폼에 수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벗어나 이 드라마가 해외 시청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굉장히 궁금하다. 우리야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내용이지만 그들에게는 전혀 낯선 내용일 테니까 말이다.
∙근래 공중파를 차지하고 있는 사극의 종류는 단연 퓨전 사극이다. 아무래도 텔레비전을 떠나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소비할 젊은 세대를 끌어들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같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된다고 하지만 동시에 다른 OTT 플랫폼에 동시 송출된다. 그리고 그 주요 시청자는 젊은 세대일 것이다. 주인공도 젊고 시청자도 젊은 게 요새 사극의 트렌드다. '현대적 변주'라 말할 만한 내용으로 사극이 재탄생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사극이든 좋은 이야기라면 기대가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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