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이름
∙대중의 취향은 정말 알기 어렵다. 심지어 이해조차 안 될 때가 있다. 나는 종종 인터넷 서점을 방문한다. 그리고 관심 갖는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확인해본다. 이유는 요즘 사람의 욕망을 읽고자하는 바람 때문이다. 물론 요새 같은 세상에 책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있냐라고 묻고 싶겠지만 독자는 항상 있다! 적어도 책을 읽는 나의 시선으로는.
∙오늘도 베스트셀러를 뒤적뒤적거리다보니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뜬금없이 쇼펜하우어가 리스트에 딱 등장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장한 것이다. 별점과 같은 평점 내지 리뷰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이 책이 올랐다니 신기한 생각이 들 정도다.
미디어의 힘은 강하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재빨리 '쇼펜하우어'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미디어셀러'라는 단어가 보인다. '미디어셀러?' 새로운 조어에 호기심이 생긴다. 스크롤을 내려 살펴보니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하석진편에 이 책이 노출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요약하자면 미디어에 등장하게 되자 갑자기 대중의 관심이 증가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출판사가 마케팅비용을 들어 밀어낸 것 같지는 않다. 특정한 배우의 출연을 빌미로 돈을 들였다기에는 대단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류 미디어의 영향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금방 온다는 게 놀랍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다. 허나 방송의 힘은 강하다!
뻔하면서 뻔하지 않은
∙한때 철학 전공자로서 이름 정도만 아는 한 철학자가 베스트셀러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솔직히 나는 철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봤지 염세주의자 철학자와 관련된 책까지 읽을 생각은 없다. 설령 미디어에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앞서 언급한 책 제목을 보라. '마흔에 읽는' 단어가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이런 종류의 책은 참 많다. 'XX대가 읽는', '사회초년생이 읽는' 제목을 단 책 말이다. 이런 책제목의 책은 대개 해당 주제를 특정한 세대 등에 맞춰 요약한 경우가 많다. 일종의 처세서다. 다만 철학자의 이름을 단 저 책은 결이 약간은 다를 것 같다. 보통의 처세술을 다룬 책보다는 약간의 깊이가 있지 않을까. 아마도 수많은 경구(?)를 달고서 말이다.
어떤 행운
∙저 유행이 얼마 갈 거 같지는 않다. 반짝하고 사라질 게 분명하다. 지금 여기의 욕망을 정면으로 다룬 책은 아니니 우리 시선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그래도 해당 출판사와 저자는 뜻밖의 행운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 마디로 얻어 걸린 사건 아닌가. 세상사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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