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문화 비평

막장 드라마의 종말?

공부를 합시다 2023. 11.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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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의 추억

∙ 내가 '막장 드라마'란 용어를 처음 들었던 작품은 김순옥 작가의 <아내의 유혹>(2008)이었다. 비교적 그 시점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여동생이 재미있게 보고 있어 호기심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때 내 질문은 '어떻게 죽은 아내를 몰라 볼 수 있느냐' 내지는 '점 하나 찍었다고 몰라본다는 게 말이 되는냐'와 같은 의문이었다.


 
∙호기심어린 내 질문에 동생의 답변은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된다'가 전부였다. 극의 개연성이라든지 설득력은 중요치 않다는 게 답변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도저히 그런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뻔한 설정의 복수극이라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극의 토대는 갖춰야 한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허나 시간이 흘렀다.

장르적 허용

∙ 지금 나는 막장 드라마를 그저 일종의 장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가 다른 장르적 설정에 별다른 딴지를 걸지 않듯이 막장이라는 장르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장르적 허용으로 이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막장의 범람을 볼 때 마다 한편으로 속이 좋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작품을 쓰는 작가나 만드는 제작자나, 그리고 소비하는 시청자나 어떤 막장(?)에 이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서다.


 
∙ 요즘 김순옥 작가의 <7인의 탈출>(2003)이 작가의 명성에 비해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한다. '순옥적 허용'이라는 조어를 만들어냈던 작가의 글빨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무려 400억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해 만들었다고 전하는데 이 정도면 재앙 아닌가 싶다. 물론 아직 드라마가 갈 길은 머니 언제 시청자가 시선을 돌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전작 <펜트하우스>의 흥행몰이를 생각하면 이런 미지근한 반응은 놀랍다.
 

감정 과잉의 드라마

∙ 앞서 얘기했듯이 막장드라마는 모든 것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나는 막장 드라마를 일종의 '감정 과잉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작가도, 제작자도, 시청자도 어떤 광기에 사로잡혀있다. 그렇지 않다면 개연성이 먼 장르적 설정을 쉽사리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청자는 한번 보면 진(?)이 빠진다는 것이다. 감정적 에너지를 상당히 소비하는 까닭이다.


 
∙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어떤 욕망에 뚜렷하게 사로잡혀 있다. 보통은 그 중심에 우리 사회의 욕망(대개는 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주인공도 다르지 않다. 복수를 위해서는 모든 게 허용된다. 그것이 법이건 윤리건 무엇이라 부르건 말이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사필귀정, 인과응보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시청자는 죄책감을 지닐 필요는 없다.
 

장르의 유행

∙ 여전히 막장 드라마는 미니시리즈,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등에서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7인의 탈출>의 부진에서 보듯 이제 우리는 막장 드라마의 자극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가 단순히 감각마비에서 오는 결과인지 아니면 더 좋은 작품으로 시선이 쏠린 까닭인지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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